잘못된 정치는 밥그릇을 걷어찬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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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 임주영

경제학에는 정해진 답이 없어
낙수효과는 완전히 틀린 논리
후진국 전락한 우리 자신 성찰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는 거센 반일 감정을 불러왔다. 사진은 당시 불매운동의 여파로 문을 닫은 유니클로 영업점. 부산일보DB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는 거센 반일 감정을 불러왔다. 사진은 당시 불매운동의 여파로 문을 닫은 유니클로 영업점. 부산일보DB

조간신문과 9시 뉴스를 챙겨 보면서 세상을 걱정하는 분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 그것이 여전히 세상을 보는 창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요지경 같은 세상의 내막을 모두 말해 주지는 않다. 지금이야말로 경험과 독서를 통해서 나오는 ‘안목’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라는 책 제목은 너무 상투적이라 한동안 구석에 처박아 뒀다. 어쩌다 마음이 동해 다시 펼쳐 보니 ‘낙수효과는 무당 경제학’이라는 첫 번째 목차부터 다루는 주제가 다 심상찮았다.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일관된 핵심 키워드는 ‘감세’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부터 최근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연장 방침 등 일련의 감세 정책이 기업의 투자 확대와 경제 성장, 그리고 세수 확충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낙수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낙수효과라는 경제 용어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고나 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 책에 따르면 낙수효과는 뜻밖에도 미국의 코미디언 윌 로저스가 미국 대공황 당시 후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처음 썼다. 그것도 돈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며 낙수효과란 없다는 걸 표현한 상황이었다.

IMF나 OECD조차도 부의 낙수효과는 완전히 틀린 논리라는 보고서를 냈다. 기업 입장에서야 아무리 법인세가 줄어도 돈이 되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법인세를 감세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낙수효과는 전혀 근거 없는 주술 경제학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주술이란 “비나이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철 지난 감세정책으로 2023년 세수 펑크가 6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하니 걱정이다. 부자감세를 즉시 멈춰야 한다.

정치는 밥을 먹여 준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치는 밥그릇을 걷어찬다. 거센 반일감정을 불러왔던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규제를 상기해 본다. 물건을 사는 쪽이 아니라 파는 쪽에서 안 팔겠다니 지금까지 경제사에 이렇게 이상한 무역규제는 없었다. 결국 일본은 우리에게 KO패를 당했다.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성공하거나 수입처를 다변화해 일본 의존도를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최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 2023년 예산안에서 소부장 특별회계 예산이 5.7%나 삭감된 채 국회에 제출됐다. 둘째, 정부는 용인에 조성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 소부장 업체들을 대거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산화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포기하고, 그 자리를 일본 소부장 기업들로 채우겠다는 이유는 정말 모르겠다.

책에는 ‘세테리스 패러버스(Ceteris Paribus)’와 같은 흥미로운 경제학 용어들이 튀어나온다. 이 용어는 ‘모든 것들이 동일하다면’의 의미를 가진 라틴어 문장으로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무수히 많을 때는 다른 변수는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한다는 경제학 용어다. 쉽게 말해 그냥 마음대로 대충 계산하겠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경제학이 주로 숫자와 데이터를 이론의 근거로 제시하니 수학처럼 정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경제학에는 원래 정해진 답이 없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우리 주변에는 세테리스 패러버스로 계산된 경제적 주장들이 난무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 3조 3000억 원의 GDP 증가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일자리가 6만 9000개 감소한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퍼주다가는 나라 살림이 거덜 난다. 국민연금이 곧 고갈돼 못 받게 된다….’ 이 책은 세테리스 패러버스로 계산된 주장들을 사실에 근거해 통쾌하게 반박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임주영 경제 칼럼니스트는 채권과 외환 등 금융시장에서 25년 이상 일하고 있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해 반지하 단칸방에 살았던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경험이 자본이 아닌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따뜻한 경제철학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린 현재를 제대로 성찰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 노동자를 산업전사라고 부른다. 개인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 신성한 노동을 왜 가장 무서운 싸움판에 비유했는지 모르겠다. 다산 정약용은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라고 했다. 선거철을 맞아 또 어떤 세테리스 패러버스 정책들이 나오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봐야겠다. 임주영 지음/민들레북/312쪽/1만 9000원.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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