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해도 동물은 미워하지 말라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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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변론 / 이장원

반려동물 둘러싼 여러 법적 분쟁
실제 판례 제시… 시시비비 가려
폭넓은 생명 존중·이해 자세 강조

<반려 변론> 표지. <반려 변론> 표지.

2022년 말 기준 국내 반려견·반려묘 수는 무려 800만 마리,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인간의 수도 1300만 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인간 4명 중 1명꼴로 개·고양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몸에 털이 나고 네 발을 가진 짐승에게 겨울철 따뜻한 안방 아랫목을 내어주는 것이 못마땅하다. 무릇 짐승은 한데 풀어 키워야 하는 법. 짐승을 짐승이라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한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반려동물을 둘러싼 끊임없는 분쟁을 부른다. 집주인에게 반려묘가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가 뒤늦게 들통(?)나 계약 파기의 위기에 몰리거나, 반려견과 함께 버스에 오르려다 이를 제지하는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인다. 흔한 일이다.

<반려 변론>은 동물을 둘러싼 법적 분쟁의 다양한 사례를 실제 판례를 통해 소개한다. 마치 법률가가 일상의 분쟁을 알기 쉽게 풀어 법적으로 시시비비하는 아침방송 법률 상담 코너 같다. 저자 역시 변호사다.

임대차 계약 당시 세입자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계약한 후 나중에 집주인이 그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세입자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사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여객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동물’의 승차를 제지할 수 있도록 명시하지만 ‘장애인 보조견 및 전용 운반상자에 넣은 애완동물’은 예외다. 즉, 반려견을 케이지에 넣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이를 제지한다면 부당한 승차 거부가 된다.

책은 대체로 흔히 일어날 법한 분쟁을 다루지만, 가끔은 기상천외한 사례도 있다. 슬레이터라는 영국 사진작가의 이야기인데, 원숭이가 그의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찍은 셀카가 문제였다. 원숭이 셀카는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슬레이터는 해당 사진의 저작권을 신청했지만, 저작권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동물보호단체는 해당 사진에 대한 원숭이의 저작권을 주장하며 수익금 관리자를 자처했다. 슬레이터가 사진집을 내면서 원숭이 셀카를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이에 대한 사용료를 내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 이후 슬레이터와 단체는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하려 했지만 이번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합의 당사자에 정작 원숭이가 빠졌다는 게 이유였다. 점입가경. 이 기상천외한 소송의 최종 결말은, 책에서 확인하시라.

원숭이의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벌어질 정도(정작 원숭이 본인은 관심도 없다)로 동물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그 지위에 대한 논란 역시 여전히 많다. 어떤 이들은 얼마 전 제정된 ‘개 식용 금지법’을 환영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개를 먹는 식문화가 왜 불법으로 취급돼야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책은 동물의 지위 향상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겨냥하듯 한 발 더 나아간다.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에 대한 논의까지 제기한다. 화분 속 식물을 유기해 죽일 경우 이를 식물 학대로 처벌한다면? 뭔 반려견 짖는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불과 수십 년전만 해도 동물 학대에 대한 논의 역시 반려견 짖는 소리 취급을 받았다.

물론 이 책이 식물에게도 하루빨리 동물과 같은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과격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닐 테다. 책은 다만 우리 사회가 그러한 고민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폭넓은 생명 존중과 이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툭 던져 놓을 뿐이다. 이장원 지음/공존/336쪽/2만 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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