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목격자
서정아 소설가
대학원 시절, 교직 이수를 위해 교육학 과목들을 수강했는데 그중에 아직까지 또렷이 떠오르는 수업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받았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에 머뭇거렸으나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자 하나둘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모두의 이야기 속에서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있는 일들은 대체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일들이었다. 그날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 남학생의 증언이었는데, 그는 수업 시간에 어떤 이유로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갔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언을 쏟아붓던 교사는 그 학생에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에 있는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쓰레기 같은 존재이니 그래야 마땅하다면서. 학급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들어가 “나는 쓰레기다”를 외치고 한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남학생은 오열했다.
나는 학창 시절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으며 늘 고분고분하고 규칙을 어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딱히 혼이 날 일은 없었는데, 어떤 오해로 인해 딱 한 번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수업 시간은 아니었고, 방학 중 청소 당번 일이 되어 학교에 갔을 때였다. 청소 당번인 아이들이 스무 명쯤 모였고 그날 당직인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교무실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줄을 서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당직 선생님의 말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떠들고 있자 선생님은 화가 나서 아이들을 세워놓고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단을 치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고성으로 폭주하더니, 나를 지목하며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오른팔을 높이 올려 내 뺨을 후려치더니 여전히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웃어? 어?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지?” 아이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벌게진 뺨을 부여잡고, 웃지 않았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웃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웃었든 웃지 않았든 그 사실 여부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학생 하나를 본보기로 삼아야 했고 그게 나였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교사 전체에 대한 일반화로 이어질까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물론 이것은 소수의 교사들 이야기이고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쯤의 일들이다. 지금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오히려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상처받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학교에서도 이런 일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그리고 학교 밖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인격체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는 일. 잘잘못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전에, 일단 본보기로 삼아 모욕을 주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많은 눈들이 그것을 목격하게 하는 일. 결국 그 시선들 속에서 수치심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일.
우리는 최근에 그러한 일을 다 같이 목격했다. 목격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 방관했을까, 쑥덕거렸을까, 연민했을까, 분노했을까. 결국 그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렸고, 우리는 ‘나의 아저씨’를 잃었다. 이번엔 목격자였으나 언젠가는 우리 역시 그가 섰던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될까. 그건 너무 늦은 일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