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시각과 청각의 변주
■심준섭 '기관의 순환'
건축물에 가스나 수도 배관으로 사용하는 철관을 마치 소리 내는 인공적인 기관처럼 구성하고 곳곳에 스피커를 달았다. 알 수 없는 어떤 혹은 인간의 신체 기관을 상징하는 듯한 서로 이어진 구조물은 연결된 듯 아닌 듯 삼면의 벽에 부착되어 있다. 삼면에 부착된 철관들은 심장 주위로 무수히 얽힌 미세혈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막을 타고 흐르는 달팽이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설치작품은 감상자가 가운데 의자에 앉아 스피커에서 나오는 여러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고 조명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인체 기관 혹은 건축물 배관인 듯한 이 설치물이 있는 공간은 그곳에 들어선 감상자를 아주 낯설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는 독일 유학 시절 앓았던 소리가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인 ‘이명증’을 떠올리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사운드 아트와 인터렉티브 아트의 특성을 이용하여 제작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관객과 상호작용으로 소통되는 작품의 의미는 다양한 소리가 가지는 잡음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이며, 이를 통해 미술이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극이 없지만 있는 것처럼 느끼는, 즉 소리가 없는 곳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현대인의 이명증이라는 고통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건축물 배관과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불편한 소리의 왜곡으로 그곳에 있는 감상자가 청각의 왜곡만이 아니라 공간의 왜곡도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런 감각의 전이는 현대인이 잘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편한 소리는 우리의 인체에서 발생하는 숨소리, 심장 뛰는 소리 등 익숙한 것들이다. 작가는 철관이 현대인의 신체를 상징적으로 전환하여 현대인의 삶의 영역 즉 건축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음을 통해 현대인의 잉여적 삶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은 잉여적 삶에 오히려 몰두하는 광경을 너무나 쉽게 목격하기 때문이다.
심준섭의 ‘기관의 순환’은 현대인이 가진 막연하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낯선 경험을 시각과 청각을 통하여 음미하게 한 독특한 작품이다. 특히 빛의 점멸 시, 즉 대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때의 소통 방식을 상상하도록 이끌고 수많은 대중 속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과 고독을 우리에게 제시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