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뜨거운' K라면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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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 브라더스’는 미국 LA를 무대로 대만 조폭 삼합회의 혈투를 다루는데, 희한하게도 한국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중에 ‘불닭볶음면’ 장면은 한국 비하 논란까지 불렀다. 대만계 여성 검사가 ‘불닭볶음면’을 봉지째 들고 다니며 부셔 먹자 경찰이 ‘쓰레기(trash)’라고 타박하는 것이다. 자막은 ‘불량 식품’으로 순화됐지만 “K푸드를 조롱한 것”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하지만 “PPL(간접 광고)인 줄 알았다”며 K라면의 치솟는 인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연상녀(니카이도 후미 분)와 한국 연하남(채종협 분)의 ‘밀당 로맨스’를 다룬 일본 드라마 ‘아이러브유(Eye Love You)’는 대놓고 K푸드를 예찬한다. 공중파인 TBS에서 지난달 23일 1화가 전파를 탔는데, 이때 여주인공이 도쿄의 한국 분식집에 앉아 라볶이를 먹는 모습이 너무나 천연덕스럽다. 2화까지 비빔밥, 부침개, 순두부가 등장했는데, 매 장면마다 워낙 맛있게 먹는지라 한국인이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화제에 힘입어 단숨에 일본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

K라면은 러시아 감옥에서도 귀하신 몸이다. 연초 수감 중인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팔도 도시락’을 천천히 먹을 수 있게 식사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15분 이하로 제한된 시간에 뜨거운 라면을 먹다가 혀를 덴 적도 있다는 눈물겨운 읍소도 통하지 않아 애처롭다. 사각 용기가 특징인 ‘도시락’은 교도소 매점에서 부동의 판매 1위다.

이처럼 해외 입맛 유혹에 성공한 K라면은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 대비 24% 증가한 약 9억 5200만 달러(약 1조 2000억 원)로 신기록을 달성했다. 9년 연속 증가다. ‘불닭볶음면’을 앞세운 삼양식품은 창사 이래 첫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업계 1위 농심 ‘신라면’도 지난해 매출 1조 2100억 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음식은 허기를 감추는 용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때론 사람 사이를 당기는 자석 같은 매개체가 되거나 문화 코드가 되기도 한다. “라면 먹을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이영애 분)가 상우(유지태 분)를 유혹한 명대사다. 싸구려 정크 푸드가 ‘썸’의 단계를 뛰어넘는 마법의 레토릭으로 확장된 사례다. 세계인으로부터 진심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K라면이 단순한 끼니의 범주를 넘어 그들의 문화권에 다양한 변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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