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앤디 워홀을 이해하는 방법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국내 미술품 조각투자, 워홀 작품 첫선
미국 팝아트 이끈 예술세계 돌아 볼 기회
영화 제작 분야서도 선구적 역할 톡톡
앤디 워홀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어디선가 늘 미술 전시나 콜라보(협업) 프로모션 등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 ‘달러 사인’이 미술품 조각투자 상품으로 국내에 선보여 7억 원 규모의 투자계약 증권 청약 모집이 마감되기도 했다.
앤디 워홀은 팝아트(pop art)를 선도한, 20세기 가장 유명한 미술가이다. ‘팝아트’는 ‘인기 있는’ ‘대중적인’이라는 의미의 ‘popular’에서 온 명칭인데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통속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부터 소재를 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만화, 영화, 사진, 광고 등 유행하는 대중 예술에 우호적이다. 팝아트는 추상미술이 추방했던 삶과 일상을 다시 미술 속으로 끌어들였다. 우리가 늘 마시는 코카콜라, TV에서 자주 보는 스타의 모습, 만화 속 이미지, 햄버거나 아이스크림 등이 소재가 된다.
워홀은 전통 미술의 수작업이 아닌 상업 포스터를 제작하는 실크 스크린이라는 판화 형식의 기계적 공정을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작업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워홀의 이러한 기계적 제작 방식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반복적 이미지들은 1960~70년대 미국의 대량 생산·소비 사회를 상징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팝아트가 미국으로 건너가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바로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때이다. 팝아트는 미국 물질주의 문화의 반영으로서, 그에 대한 집착과 낙관을 드러낸다.
예술가로서 본격적 인생을 시작하기 이전 워홀의 경력에서 우리는 그의 팝아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949년 뉴욕으로 옮긴 워홀은 곧 인기 삽화가로 자리 잡았고, 10년 후 성공한 광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의 삽화와 광고 디자인은 〈보그〉 등 유명 패션지를 뒤덮었고, 그는 고급 패션업계 홍보를 전담했다. 상업 예술가로서 절정에 선 바로 그때 워홀은 순수미술 세계로 전향한 셈이다. 그때까지 잡지, 만화, 대중매체, 패션을 수없이 접했던 뉴욕에서의 경험은 그가 독특한 20세기 미술가가 되는 자양분을 제공했다.
워홀은 진정한 자본주의 예술가로서 돈 버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 처음부터 팔릴 만한 작품들을 제작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의 작품들이 워홀 자신의 광고였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미지 홍보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상품으로 광고했다. 그러나 워홀이 위대한 천재로, 매력적인 스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그가 양면성을 지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질문명을 찬양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 그 모든 것의 무상함을 강조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을 담은 ‘재키II’ 시리즈나 ‘전기의자’‘총’ 같은 작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워홀은 팝아트 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다른 한편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다. 그는 8시간 동안 카메라 이동도 편집도 없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밤새 찍은 ‘엠파이어’(1964)나 부조리한 상황극과 같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러한 워홀의 영상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영화 두 편이 있다. 먼저 1965년을 배경으로 한 조지 하이켄루퍼 감독의 2007년 작 ‘팩토리 걸’은 워홀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뮤즈이자, 다른 한 편은 자본을 제공하는 스폰서였던 에디 세즈윅이라는 여성에 관한 영화이다.
또 다른 영화는 메리 해런 감독 1996년 작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가 있다. 워홀은 1968년 6월 3일 총을 맞았다. 폐, 지라, 위, 식도를 관통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앰뷸런스가 아니라 기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스타로 만드는 데 능숙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워홀은 총격에서 살아남았지만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이 사건 이후 ‘죽음’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때 워홀을 쏜 사람은 워홀 팩토리를 기웃거리던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이다. 워홀에게 넘겨주었던 자신의 희곡을 도용당했다고 생각한 솔라나스는 워홀에게 ‘영혼의 살인자’라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 두 영화에 나타난 상반된 성격의 두 여성을 비교해 보면, 워홀이 주변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와 워홀이라는 인물에 관해 좀 더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워홀 자신과 워홀 팩토리의 분위기, 그리고 그의 작업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된다. 영화 ‘팩토리 걸’에는 워홀 재단의 도움을 받아 실제 워홀의 작품들이 영화 소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 역시 좋은 볼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