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잘못 배당해 성범죄자도 풀려났다
부산지법, 실수로 선고 자체 무효
유사 사건 빈발 사법부 신뢰 실추
부산지법이 선원 22명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재판부를 잘못 배당(부산일보 지난 7일 자 2면 보도)한 데 이어 청소년 성 매수 전과자 역시 재판부를 잘못 배당해 항소심에서 원심이 파기된 과거 판결이 재조명된다. 법원이 재판부 배당 오류로 스스로 사법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9월 24일 30대 남성 A 씨는 부산의 한 숙박업소에서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만난 10대 청소년 B 양에게 30만 원을 주고 성 매수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6년 5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 매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A 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합의3부는 A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결국 항소심 판결로 2008년에도 성 매수로 처벌받은 성범죄 전과자는 풀려나게 됐다. 이런 결과는 재판부가 A 씨 항소 이유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합의부가 아닌 단독판사의 1심 판결이 관련 법률 규정을 위반에 했다”며 원심판결을 직권 파기했다. 판사 3명이 심리하는 합의부가 맡아야 하는 사건을 1명이 심리하는 단독부가 진행해 선고 자체가 무효라는 취지다.
형사사건은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건은 합의부, 그 이하의 사건은 단독판사가 진행한다. A 씨의 혐의는 명백한 합의부 소관이지만 이 같은 오류를 항소심에서 발견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지법도 스텔라데이지호 공판을 단독부가 아닌 합의부에 배당한 황당한 실수가 뒤늦게 드러났다. 재판부는 선고 직전 이를 인지해 공판 기일을 추가로 한 차례 더 열고 그동안 재판을 진행한 합의부가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하는 ‘재정 합의’로 오류를 무마했다. 재판부도 배당 오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전국 1호 선고로 관심을 모았던 경남 한국제강 사건 역시 법원의 배당 오류로 심리가 무산될 뻔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지난 3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변론 기일을 다음 달 24일로 미뤘다.
법원이 단독부가 맡아야 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을 합의부에 배당한 실수를 뒤늦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지법도 변론 기일을 한 번 더 열고 재정 합의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사소한 법리 하나로 결과가 달라지는 재판에서 기초적인 오류가 발견된다면 당연히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다”며 “재판부 스스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면 누가 재판부 권위를 인정하겠나”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