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인생 재미있는 일을 하세요”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 오스미 요시노리·나가타 가즈히로
실패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과학자만큼 즐거운 직업 없어
과학이 문화로 인식되길 희망
성적이 좋으면 의대 가라는 권유를 받는다. 본인의 적성과 희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영재학교나 과학고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도록 교육비·장학금 환수 조치를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고 한다.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이 2000명이 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눈에 선하다. 이런 판국에 ‘과학만큼 즐거운 직업은 없다’ 혹은 ‘과학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다’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질지….
‘오토파지(자가포식)’ 연구로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와 일본세포생물학회 회장을 역임한 명문 교토대의 나가타 가즈히로 명예교수의 말이니 속는 셈 치고 일단 들어나 보자. 우리는 일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29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만만치 않은 나라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이렇게나 많았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의사가 되려는 이유는 대부분 고소득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과학자들에게>의 공동 저자 나가타 교수는 재미있는 것과 안전한 것이 있을 때 평생 재미있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바라기 때문이다(그는 시인으로 아사히신문 가단(歌壇) 선정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과학자 대신 의사가 되려는 이유 중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과학에서는 얼마나 실패를 거듭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과학자로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험의 묘미는 시작 전에 기대한 결과를 배신하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와 맞닥뜨릴 때 제대로 발휘된다. 과학자와 혁명가는 낙관주의자여야 한다!
과학자가 되기에 너무 늦은(?)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들은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길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곧장 답을 얻지 못하면 그 의문은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는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생각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동한다. 이 프로세스를 거쳐야 원하는 상상력이 길러진다. 알고 싶은 것을 너무 빨리 알게 되면,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요즘 특히 경계할 부분이 있다. AI의 발달로 인터넷은 우리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정보를 점점 더 많이 보여 준다. 자신의 흥미를 헤아려 우선적으로 보내오는 정보만 접한다면 자기 세계가 점점 닫혀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세계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의 세계에 갇혀 버릴 위험이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 것이다. 즉 물음이 중요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미 교수가 현재 일본의 과학 연구는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몇 년 단위로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과학의 역사에서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하다고 판명된 위대한 발견들은 모두 유용성이 아닌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응용연구는 기초연구가 축적된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 전체가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자신이 즐거워서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이다.
모든 사람이 과학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학자가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여야 한다. 과학자 이외의 사람들도 과학자의 일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학을 문화의 하나로 인식하면 좋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정부는 ‘과학계 카르텔’을 언급하며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축소하더니, 내년도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한다. 독창적이고 근성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스미 요시노리,나가타 가즈히로 지음/구수영 옮김/마음친구/256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