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해부했더니 ‘감정’이 보였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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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 / 딘 버넷

실체 없는 '감정'이라는 뇌 활동을
뇌과학 '현미경' 아래에 두고 관찰
감정의 기원·진화에 대한 추적기

슬픔이나 기쁨 등 감정에 의해 생겨난 눈물은 눈의 자극을 통해 생성되는 눈물과 화학적으로 성분이 다르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슬픔이나 기쁨 등 감정에 의해 생겨난 눈물은 눈의 자극을 통해 생성되는 눈물과 화학적으로 성분이 다르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감정(感情)’이란 무엇인가. ‘이성(理性)’과는 완전히 다르며, 또한 ‘생각’과도 다르다. 흔히들 ‘이성’이나 ‘생각’은 뇌의 활동으로 여기지만, ‘감정’은 마음의 문제라 말한다. 그러면, 마음은 우리 몸 중 어디에 속한 부분인가. 뇌인가, 심장인가, 아니면 가슴인가. 복잡해진다.

슬프게도 뇌과학의 발달은 “감정 역시 뇌의 활동”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뇌간이 시작되기 전 피질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번연계에서 내 첫사랑의 애틋함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슬프게도 이 세상이 너무 삭막해진다. 최근 들어 ‘(감정 활동은) 번연계보다 좀더 광범위한 뇌 영역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어쨌든 같은 뇌 안의 활동이다. ‘감정이 뇌의 활동’이라는 사실을 슬프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뇌의 활동인 셈이다.

하지만 꼭 슬프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이 감정이라는 게 사실 매우 거추장스럽더라는 거다. 감정이 뇌의 작용이라면, 즉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 현상이라고 한다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여러가지 조건을 조절함으로써 감정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감정을 조절·제어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멋진 신세계가 될 수 있다. 상사의 갑질로부터 분노를 참을 수 있는 약물이 있다면? 그것도 좋지만 실연으로부터 고통 받지 않은 약물이 더 유용해 보인다. 만일 누가 그런 약을 발명한다면, 그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은 물론 노벨평화상까지 준다고 해도, 나는 찬성이다. 굳이 하나의 상만 줘야 한다면 노벨평화상이 더 어울린다.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을 진화의 가장 윗 단계로 여기는 발상은 과거에도 많았다. 특히 공상과학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인간보다 진화한 외계의 생명체는 대체로 인간보다 감정이 부족하거나 혹은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그려졌다.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지적으로 우월한 종족 ‘벌컨족’이 그렇다. 평소 감정 자체를 거부하는 벌컨족의 감정 억제 능력은 7년에 한 번씩 ‘짝짓기’를 하는 동안에만 사라진다.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 표지.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 표지.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은 감정이라는 기이하고 실체 없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코미디언이자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후 다스리기 어려운 감정의 파도를 맞닥뜨리면서, 이러한 감정을 현미경 아래에 두고 면밀하게 관찰하고 추적한다. 불가해한 슬픔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것으로 시작한 여정은 뇌과학과 심리·사회 현상까지 뻗어 나가 종횡무진하며 감정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추적으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슬픔이나 기쁨 등 감정에 의해 생겨난 눈물은 눈의 자극(먼지가 들어간다든지)을 통해 생성되는 눈물과는 화학적으로 다르다. 감정적인 눈물에는 피부를 통해 흡수될 때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화학물질인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이 들어있다. 이처럼 감정은 우리의 신체 활동(눈물의 성분 등)을 변화시키고, 또한 특정 신체 자극(옥시토신을 피부로 흡수시키는 것 등)은 감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여전히 감정을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방법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세계의 뇌과학자들은 인류를 위해 더욱 분발해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벌컨족의 감정 억제 능력이다. 딘 버넷 지음/김아림 옮김/북트리거/500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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