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바람 담은 붓 터치에 마음이 움직인다
임상진 ‘청화백자, 다완의 조우’
갤러리 이비나인서 22일까지
캔버스에 반죽 덧바르는 방식
직접 본 그림은 신비롭고 특별했다. 갤러리 이비나인 정재형 대표가 “꼭 봐야 할 전시”라고 한 말이 어떤 뜻인지 짐작이 된다. 부산에서 40여 년 전업 작가로서 작업에만 빠져 살았다는 임상진 작가. 그의 놀라운 재능과 그보다 더 많은 사연을 들으면 작품이 참 애틋하게 다가온다.
“나만 할 수 있는 고유한 방식을 많이 고민했죠. 결과물을 처음 내놓았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그림도 거의 다 팔릴 정도로. 그런데 전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릴 줄 알았고 외부 활동은 전혀 안 했어요. 컬렉터 관리는 물론이고 갤러리와의 관계, 언론 인터뷰도 할 줄 몰랐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저는 여전히 작업을 이어가지만, 외부에 알릴 기회가 사라지더라고요.”
임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신동으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때 대부분의 미술 대회를 휩쓸었고 중학생 때 TV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이 나왔다. 당시 동네 사람들이 모여 TV에 나온 임 작가를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교수와 미술 전공 대학생, 전문가들이 참여한 충렬사 기록화 작업에 참여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국전을 비롯해 부산일보 미술대전, 중앙 미술대전 등 그림을 내면 수상을 놓친 적이 없다. 한 마디로 그림 솜씨로는 어디서든, 누구나 인정할 정도였다.
“그림 표현 방식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형태뿐만 아니라 질감까지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기존의 재료들은 마음껏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문득 공사장을 지나가는데 석회 칠을 하는 장면을 보며 저걸 활용해 보면 어떨까 했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양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죠.”
작가의 설명대로, 그렇게 탄생한 것이 ‘미끌도박’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다. 석회와 모래, 해초를 삶아 기와 사이에 바르는 모르타르(접착제 역할) 비슷한 반죽을 만들었다. 그걸 먼저 캔버스에 원하는 형태대로 덧바른다. 반죽이 마르면 거칠거칠한 콘크리트나 요철 같은 느낌이 난다. 그 위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린다. 한국 전통 도자기나 막사발(다완), 돌부처를 주로 그리다보니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대상을 실제처럼 구현해 낼 수 있었다.
특히 다완이라는 소재는 한국 고유의 유물인 동시에 굴곡진 한국의 역사 속에서 일본에 빼앗겨버린 것이다. 거친 질감까지 재현한 다완 그림은 전통미에 힘든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기운까지 담아내고 있다. 미끌도박 기법으로 만든 거친 질감은 돌부처의 미소를 그린 부처 시리즈에도 잘 어울린다. 부처 시리즈는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청화백자, 철화백자는 질감뿐만 아니라 섬세한 문양을 보며 임 작가의 재능에 또 놀라게 된다.
“미술계에서 많이 쓰는 재료가 아니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색이 나오지 않았고 색이 번지는 것도, 색이 흡수되는 것도 정말 달랐죠. 엄청난 시행착오 과정은 마치 수행 같았어요. 그래도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가장 좋아하는 것도, 가장 잘하는 것도 그림이니 계속 하자 싶었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버티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삶의 비바람을 담은 붓 터치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 그림은 밀도가 굉장히 높다. 붓을 들지 않는 시간조차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정도로 그림에만 빠져 있는 임 작가. 지금도 여전히 더 잘 그리고 싶고 그림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그림에선 그 마음이 느껴진다.
임 작가의 ‘청화백자, 다완의 조우’전은 갤러리 이비나인에서 22일까지 열린다. 원래 15일까지 전시를 진행한 후 서울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여러 관람객의 요청 때문에 22일까지 전시를 연장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