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시 '금주 구역' 조례
미국 위스키 잭 다니엘의 본거지는 테네시주 무어 카운티(Moore County)인데, 정작 이 지역 식당이나 상점에서는 이 세계적인 토산주를 구입하거나 마실 수가 없다. 무어 카운티는 연방 금주법 폐지 뒤에도 주류 판매와 음주가 불법이어서다. 이런 지자체는 알코올이 증발해 버렸다는 비유로 ‘드라이(dry) 카운티’로 불린다. 그 반대는 ‘웨트(wet) 카운티’. 미국에서 500곳 이상의 지자체가 아직 ‘드라이’ 상태다.
유럽은 술에 너그러울 것 같지만 상당수 국가가 늦은 밤과 새벽에 주점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한다. 영국 스코틀랜드는 과음을 막기 위해 주류 최저 가격제 MUP(Minimum Unit Pricing)까지 도입했다. 싼 맛에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취지다.
조선은 건국 때부터 금주가 ‘디폴트’(초기 설정)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술’ 키워드로 읽으면 금주령과 현실론의 투쟁사다. 임금들은 끊임없이 금주령을 내렸지만 결국 솜방망이였다. ‘거리에 술병을 들고 다니지 말라’고 어명을 내렸다가 ‘술주정하는 것만 금한다’며 단속을 완화했다. 다시 금주론이 강경해지자 ‘고기와 생선 안주 금지’라는 웃지 못할 고육책으로 음주를 억제하려 했다.
실록에는 임금 앞에서 만취 신하가 궁녀를 희롱하거나, 심지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사를 부려 망신한 사례까지 나온다. 영의정 정인지는 술주정의 꼭짓점이다. 작취미성으로 어전에 나와 임금과 문답을 못하는 건 예사. 불콰해져 세조에게 ‘너’라고 하대하거나, 불교 심취를 비난해 술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파직과 귀양은 가볍고 목을 베야 한다고 신하들이 들끓었다. 세조는 요지부동으로 정인지를 두둔했다. “취중 실수여서 죄를 물을 것도 못 된다!” 주사에 관대한 내면 의식의 면면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부산의 어린이집·유치원, 공원, 정류장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하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부산시의회 이종진 의원이 발의한 ‘건전한 음주문화 환경조성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지난 2월 본회의를 통과해 금명 시행된다. 이 조례로 지자체는 ‘금주 구역’ 지정과 단속·과태료 부과 권한을 갖게 됐다. 그간 너그러운 음주 문화 탓에 잘못된 음주 행태에 대한 예방 시스템이 없었다. 그사이 부산 음주율은 전국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 조례를 계기로 ‘음주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을 따지는 성숙된 음주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