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기억에 관한 단상
신호철 소설가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낼 뿐이다.
기억되길 바라는 삶보다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삶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리워하고, 기억해야 할 누군가가 많은 요즘이다.
불현듯, 누군가 생각날 때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연락이 끊겼거나 어떤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졌거나, 혹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와의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다 보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혼자 실컷 감상에 젖다가 돌연, 이런 생각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나만 기억하고 청승 떠는 게 아닌가?”
이런 유치한 생각을 떠올렸던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학창 시절에 꽤 어울려 다녔던 친구가 있었다. 우연히 친구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친구의 경조사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다 그렇듯 우린 술잔을 기울이며 학창 시절 추억을 되씹었다. 소위,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는 식이었다.
근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당황스러웠다. 내 딴엔 소중했던 추억을 떠벌리고 늘어놓았는데 정작 그 친구는 그 추억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방학 때 친구가 나에게 쓴 편지 내용이라든지, 여학생 앞에서 부끄럼이 많았던 친구를 놀렸던 나의 장난, 혹은 그가 입영하기 전, 늦도록 함께 술 마셨던 날도 기억하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지만, 솔직히 상처받았었다. 그의 기억에는 내가 함께 어울려 다녔던 친구가 아니었다.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 했음에도 가볍게 잊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물론, 기억 못 한 친구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내 잘못도 아니었다. 아니, 잘못을 따지는 번지수부터가 틀렸다.
나 또한 어떤 사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던가. 각자의 의미에 따라서 다르게 기억하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는 나름의 의미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억과 다르다는 이유로 섭섭하게 여긴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가거든’이라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 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이 가사를 되뇌면 왠지 가슴이 시큰해진다. 나도 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사라졌는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다니…. 누구라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준다면 내 삶은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내 삶이 다하고 난 뒤,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어떻게 알까? 죽음에 임박해서 내 삶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고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내 삶의 가치를 타인의 기억으로 판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내가 잊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역이지 내 삶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그 사람이 안타까워할 일이다. 그의 삶에서 누군가를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기억에 남기 위해 애쓰는 것은 공허한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낼 뿐이다. 그래서 기억되길 바라는 삶보다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삶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리워하고, 추모하고, 기억해야 할 누군가가 많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