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예술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도시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경기침체·노령화로 쇠퇴의 길 걷는 부산
창작-유통-소비 집약된 문화산업 일으켜
공공 일자리 늘리고 사람들 모이게 해야
일주일 전, 〈부산일보〉 1면에 ‘과자 한 개, 두부 한 모 사기도 겁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시장 물가를 몸으로 체감한 지는 이미 오래다. 부산을 대표하는 서민 메뉴 돼지국밥도 평균 1만 원 시대에 돌입했다.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의 점심값이 한 달에 20만 원이 넘는 셈이 된다. 생필품 가격도 장난이 아니다. 바야흐로 ‘초고물가’ 시대다. 소비자의 구매 의욕은 줄어들었고 외식은 언감생심이다. 곳곳에 빈 점포가 넘쳐난다. 일자리와 인구의 감소는 도시의 평균 연령만 높이고 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저소득층이 저소득층을 괴롭히는 ‘같은 계급끼리의 자해’가 생길 수도 있다. 프란츠 파농이 말한 ‘수평 폭력’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1929년 10월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미국 수출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대미 수출에 의존하던 독일은 600만 명이나 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독일인들은 그 해결사로 히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내가 집권하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독일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외쳤다. 덕분에 1928년 의회 의석이 12석이었던 나치당은 1930년 104석으로 늘어나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런 히틀러의 선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
2024년 현재 부산은 노인 인구가 약 22%나 되는 초고령화 도시다. 지난 3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부산의 인구수는 328만 7292명이다. 전월 대비 2109명이 감소했다. 평균 연령은 46.8세이고, 도시의 절반이 50세 이상 중장년층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총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노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2035년에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인구 3분의 1이 노인이라는 말이 된다. 더욱이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도 양질의 직장을 구하지 못해 매년 5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부산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5년간 일자리·주거·문화 등의 분야에 약 2조 원을 투자해 “젊고 희망 있는 활기찬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구체적이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열매만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당장에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 문제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자리 정책이란 일과성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정책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된다. 제조업이 떠난 부산의 다음 먹을거리는 항만과 공항을 바탕으로 한 물류 산업과 문화 산업이라야 한다. 문화 산업 가운데 공공극장의 제작극장화는 많지 않은 비용으로 일자리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책이 될 수 있다. 문화의 창작(제작)-유통(매개)-소비(향유)가 집약되어 선진국과 같은 문화 산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연간 약 18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한다. 인구가 약 330만 명이나 되는 도시가 공공극장을 일자리 늘리고 사람 모으는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 고작 32만 명이 사는 독일 도시 만하임은 1년 예산 2조 원 중 약 640억 원을 투자하여 예술가 250명을 포함해 700명의 공공 일자리를 유지한다. 하물며 독일 중소도시 인구의 10배가 넘고 예산이 8배가 넘는 부산에서 전문화된 조직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공연장 가동률이 30%밖에 되지 않고, 장소나 임대하는 대관 사업이 공공극장의 주 업무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공연 예술가들은 공연만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가?
대한민국에는 127개의 지역문화재단과 267개의 문예회관이 있다. 공공극장은 공연을 예술적 상품만이 아닌 문화적 공공재로 보고 예술 공연을 제작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부산시는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준비를 위해 39세 이하 시즌 단원을 공모한다. 해마다 같은 일의 연속이다.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부산에서 집을 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 일자리를 예술과 문화에서 먼저 시작하자.
부산은 원래 역동적인 도시였다. 지금은 부산 물고기가 고향 물을 떠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다른 도시보다 부산이 먼저 문화적인 역동성을 보이자. 중앙정부가 못하면 지방정부부터 먼저 시작하자. 미래를 보는 일은 바로 눈앞의 열매만을 노리면 안 된다.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 멀리 보고 긴 호흡으로 설계하자. 그래야 세계 각지에서 예술 인재가 모이는 도시, 살고 싶은 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