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귀는 열기로 한 대통령, ‘총선 패배 청구서’ 수용할까
영수회담 어떤 의제 다루나
민생회복지원금 등 입장차 크지만
선별 지원 등 접점 찾을 가능성도
채 상병·김건희 특검 등 난제 산적
민주 제기 의제 다 오를 수도 있어
합의문 등 가시적 성과 어려울 듯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9일 첫 단독회담에서는 다양한 정국 현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이번 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서 의제를 제한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국정 전반에 걸쳐 폭넓은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현안들이 많아 쉽게 합의에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는 먼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생회복지원금(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정부가 소득 수준과 형편에 관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똑같이 나눠주는 방식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온 만큼, 윤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저소득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는 여지를 두고 있어 양측이 서로 양보한다면 일정 수준에서 접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달 넘도록 출구를 찾지 못하는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 문제도 화두가 될 수 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끝내 의료계가 불참한 가운데 출범한 상황에서 이 대표가 최근 제안한 국회 차원의 ‘보건의료 개혁 공론화 특별위원회’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지 관심이다. 이 대표가 여야,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거듭 제안하며 윤 대통령을 압박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과의 실무 조율 과정에서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및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 도입, 그리고 윤 대통령이 각종 쟁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사과 등을 의제에 올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의 면전에서 이같은 난제들을 어떻게 꺼집어 낼 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대통령실의 제안을 수용해 사전 의제 조율을 건너뛰고 ‘자유 회담’ 형식을 전격적으로 수용한만큼 윤 대통령에게 야권의 입장을 선명하게 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건희 특검법’은 이번 회담의 성격과 무게 등으로 미뤄볼 때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다. 민주당 천준호 대표 비서실장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특정 의제를 제한하거나 어떤 의제는 언급하면 안 된다고 한 건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민주당이 사전에 제안했던 모든 의제들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며 “민생 회복을 위한 조치는 당연하다. 특검법도 노골적으로는 수용을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언급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또 이태원참사특별법 등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거듭 행사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주앉은 윤 대통령은 일단 이 대표의 말을 최대한 경청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비서실장 인선 브리핑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초청했다기보다 이 대표 이야기를 좀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야권이 추진하는 각종 특검법 수용에 부정적이다. 일부 특검법의 경우 야당의 ‘정치 공세’라는 시각이 여전하다. 그러나 여당의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해 마련된 야당 대표와 첫 회담이라는 점에서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공수처가 해당 사안을 수사 중인 도중에 특검하자는 것은 법리적으로나 원칙적으로 안맞지만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각 정당 원내대표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여야정 상설국정협의체가 복원될지도 주목된다. 대통령실은 총선 이전까지 대통령실은 ‘야당 대표의 협상 파트너는 여당 대표’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 대표가 요구한 윤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을 거절해왔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권의 총선 참패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단독회담이 만들어졌는데 이 대표가 여야정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체를 수용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 대부분의 현안들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고려할 때 공동 합의문 같은 명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