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뒤늦은 해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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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1982년은 어떻게 기억되나. 먼저 떠오르는 건 프로야구 출범이다.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시작으로 프로야구가 첫선을 보였는데, 날마다 경기하는 프로야구의 탄생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물론 당시엔 알지 못했다. 정권 기반이 취약한 신군부가 국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던 이른바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소산이었음을. 새해 벽두인 1월 5일부터 야간 통행금지가 37년 만에 해제돼 유흥·윤락 업소가 크게 늘어났고, 영화계 쪽에는 성 묘사 검열 수위가 낮아져 에로영화가 범람했다. 그해 사회적 풍경들이 그랬다.

또 한편 군사정권은 국민들의 의식을 틀어잡기 위해 부심했다. 4월 10일 시작한 ‘의식개혁 국민운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를 비웃듯 경찰에 의한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진다. 4월 26일 경남 의령군 궁류면 오지마을에서 일어난 ‘우 순경 사건’. 우범곤이라는 순경이 지서에서 총기와 실탄, 수류탄을 탈취한 뒤 마을 사람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 56명을 죽이고 34명에 중경상을 입힌 희대의 살인극은 본인의 자폭으로 끝났다. ‘건국 이후 가장 쇼킹한 사건’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이다. ‘최단 시간 최다 살상’으로 한동안 기네스북 기록에도 올랐다.

사건 전반을 보면, 결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광기를 부리는 동안 경찰의 신속한 대응은 없었다. 우 순경은 평소 난폭한 성격과 술버릇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의령경찰서 중 가장 오지인 궁류지서로 좌천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경찰의 부실한 채용·인사 시스템이 낳은 참사였던 셈. 하지만 군사정권의 보도 통제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했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잊힌 시간이었던 이 사건의 희생자 추모 행사가 42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고 한다. 26일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4·26 추모공원에서 진행된 위령제와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은 긴 세월 억누른 눈물을 쏟아냈다. 추모 움직임이 공식 시작된 건 2022년이었다. 그때 의령군이 추모공원 조성과 위령탑 건립 계획을 세웠다. 현재 추모공원 공사는 막바지 작업 중인데, 이번 추모식은 42주기에 맞춘 위령탑 완공과 함께 이뤄진 것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해원(解寃)이다. 유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빈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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