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중·수·청 선거'에 계륵된 부산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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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사회부 차장
민주당 전국적 압승에도 부산서 참패한 건
산은 이전 등 현안 외면에 대한 또 다른 심판
중도 수도권 청년 표심만 챙기는 정치로는
힘들여 지켜온 부산 민주당 근간 흔들릴 것

“당원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부산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비 확보와 부산 현안 해결 측면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앞에서 끌고, 지역 민주당 의원들이 지원하는 방식이 최적의 구도인데, 황금비가 깨진 점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최근 만난 부산 국민의힘 원로 정치인이 ‘4·10 총선’ 결과를 두고 내놓은 평가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부산 18개 선거구 중 17석을 싹쓸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단위의 대승에도 최소한 부산만 놓고 보면 고작 1석을 건지는 예상 밖 참패로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한 모양새가 됐다. 남부권의 스윙보터로 일컬어지던 부산에서 이처럼 ‘원사이드 선거’가 펼쳐진 것을 두고,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조차 ‘17대 1의 미스터리’라는 반응이 나온다.

투표 결과를 자세히 뜯어보면 상반된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당 후보가 출마한 연제구를 제외한 17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총 80만 7990표를 얻어 44.9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부산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40% 이상을 얻으며 선전했다. 부산 전체를 묶어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했다면 민주당을 위시한 범야권이 8석을 가져갔을 것이다. 부산도 민주당 지지 기반이 탄탄하고, 여차하면 민주당에 표를 던지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부산과 반대로 대전은 국민의힘 후보들이 42%를 득표하고도 7석 중 1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전이 호남과 같은 ‘민주당 텃밭’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부산을 보수 텃밭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특히나 부산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긴 만큼,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때보다 민주당으로서는 해볼 만한 선거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민주당 지도부 태도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철저히 부산을 패싱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 초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한 이재명 대표는 서울대병원 헬기 이송으로 ‘지역의료 무시’ 논란을 촉발시키며 부산 시민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이 때문에 그가 당 대표로서는 물론, 개인적인 부채의식에서라도 이번 총선을 통해 부산 민심을 다독일 선물 꾸러미를 내놓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은 깡그리 무너졌다. 선거 유세차 부산을 찾은 이 대표는 “오만불통의 윤석열 정권 심판”을 목 놓아 외치면서도, 부산 현안인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을 회피했다. 산은 이전은 민주당 부산시당의 1호 공약임에도 말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최악의 시정 파탄으로 향후 10년간 민주당이 부산에서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싸늘한 분위기에서도 전재수 최인호 박재호 같은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마치 대신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지역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부산 민주당의 그간의 노력으로 이반됐던 지역 민심도 상당 수준 누그러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 대표를 비롯한 친명 지도부는 철저하게 부산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하게 말하면 부산 민주당이 지역에서 어렵게 지켜온 싹을 작심하고 자르고 나선 듯한 인상이었다. 가덕신공항 건설에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최인호 의원은 불과 693표 차로 고개를 떨궜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자녀들이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생겼으면 하는 기대감에 이번 선거에서는 산은 이전에 적극적인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민주당 중앙당의 태도 여하에 따라 부산의 선거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선거는 중앙당에 짓눌린 부산 민주당의 답답한 무기력에 대한 또 다른 민심의 심판이기도 했다.

부산 사람으로서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당이 전국적으로는 압승을 거두면서 ‘부산 패싱’이 고착화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표심’을 얻으면 이긴다는 선거 공식이 민주당 선거의 새 표준이 된다면, ‘보수세 강한 노인 인구가 많은 지방’ 부산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딱히 먹을 건 없는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으로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은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등 지역 현안 처리를 위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도 2년 남은 지방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부산 없이도 낙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면 부산 현안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고작 한 석 주면서 부산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 하느냐”고 원망하기에 앞서 “이렇게 부산을 무시하면서 표를 달라고 하느냐”는 시민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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