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목표는 의사 아니라 환자 위한 것 아닌가요?” [벼랑에 선 환자들의 호소]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중증질환자 피해는 현재진행형
항암 치료 밀린 환자 ‘전전긍긍’
피해 우려해 대놓고 신고 못 해
사직 압박에도 여전히 의사 신뢰
의료개혁특위에 의료계 복귀를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지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지금 사태가 원망스럽고 힘들지만 혹시 피해 사실을 밝혔다가 치료를 받는 병원과 교수에게 알려져 피해를 볼까 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것입니다. 의료계가 대화의 장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사진) 대표는 최근 〈부산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의 연대체로 2010년 결성, 8만여 명의 환자와 가족이 참여한다. 안 대표는 아내의 백혈병 투병을 계기로 2005년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환자 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현재 한국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와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를 겸임한다.
안 대표는 2020년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방침에 반발해 일어난 의료공백 사태와 올해의 의정갈등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0년만 해도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의료공백 피해 사례를 언론에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언론 제보나 복지부 신고로 병원과 의사가 조사를 받으면 환자가 오히려 피해를 볼까 봐 상당히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들 태도는 조심스럽지만, 암이나 백혈병 등 중증 질환 환자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환자단체연합회 피해 사례 모니터링에 참여한 한 백혈병 환자 사연이 대표적이다. 안 대표는 “백혈병 환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3~4차례 항암치료를 통해 암세포를 5% 이하로 떨어뜨려 관해상태(완치는 아니지만 호전된 상태)가 돼야 한다”며 “한 달 간격으로 고용량 항암제를 투여하는 항암치료를 받고 관해상태가 되면 수술을 받는데, 1차 항암 후 2차 항암이 밀려 다시 재발한 환자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다시 처음부터 항암치료를 받으면 암세포가 첫 치료만큼 반응할지 알 수 없고, 환자가 추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에 더해 정신적인 불안감까지 유무형의 피해가 극심하다.
안 대표는 “환자들은 그야말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을 수밖에 없다”며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정부가 정할 일이지만 환자들이 현장에서 느낄 때 의사는 확실히 부족하다. 앞으로 증원되는 인력이 중증 필수의료과와 지역에 갈 수 있도록 정책을 설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의료공백에도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는 견고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교수들이 ‘주1회 휴진’이나 사직 같은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환자를 두고 떠날 의사는 없다고 본다”며 “환자들은 현장에서 묵묵히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들을 신뢰하고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5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수요자 단체 중 하나로 참석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회, 대한의학회 등 의사단체는 참여하지 않았다. 안 대표는 “의료계가 돌아와서 의료개혁특위에 참석해 의료개혁에 힘을 보태야 한다”며 “의료계의 참여 없이는 반쪽짜리밖에 안 되는 만큼 의료계가 대화의 장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안 대표는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수술실 등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집단행동을 하지 못 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2020년에 발의된 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며 “환자들은 오늘도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 의료진이 환자들의 절실한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