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윤사월(閏四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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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1916~1978)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시집 〈청록집〉(1946) 중에서

슬픔이 깊어지고 깊어지면 맑아진다. 해맑은 웃음 속엔 언제나 슬픔의 향취가 은은하게 풍긴다. 봄의 어여쁨 속엔 겨울의 삭막한 한기가 보글댄다. 생동하는 신록 너머로 어룽대는 저 아지랑이는 아픈 날들을 정화하는 표지일 것이다.

‘눈먼 처녀’가 듣는 ‘꾀꼬리 울음’ 소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맑고 고요하여야 들려오는 봄의 소리는 오직 한 길로 전해오는 생명의 신비다. 아니 깊고 깊은 외로움 속에서야 침전되는 영혼의 파장이다.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넓고 깊은 가청(可聽) 세계를 가지고 있을까? 해가 길어져 가는 ‘윤사월’, 제 그림자와 혼자 노는 날들이 많아진다. 슬픔이 기진하여 투명해진다. 아픔이 다하여 고요해진다. ‘고요한 외로움’이 천지의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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