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겪은 부모 “아이 살리려면 각자도생할 수밖에” [벼랑에 선 환자들의 호소]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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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시민 소아응급 체험담

한밤 병원 전전하다 결국 서울행
작년 부산대병원 파업 악몽 겪어
그때보다 더한 상황에 공포감도

“새벽에 100일도 안 된 아이를 안고 ‘응급실 뺑뺑이’를 돌고 있으니 이게 바로 각자도생이구나,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부산 기장군에 사는 권 모(43) 씨는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생후 90일 된 딸을 둔 아버지인 권 씨는 벌써 두 번째 병원 뺑뺑이를 경험했다. 부산 소아·청소년 응급치료 시스템 부실을 몸소 겪은 것이다.

지난달 아이가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는 일이 있었다. 그는 부산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다 곧바로 동네 병원을 찾아 아이를 입원시켰다. 지난해 8월 부산대병원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 겪은 끔찍한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폐렴 직전인 아이를 안고 부산과 양산을 거쳐 서울까지 가서야 치료받았다.

권 씨는 “전공의 집단행동보다 규모가 작았던 지난해 파업 때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물론, 입원을 받아줄 여력이 부울경에는 없었다”며 “더 큰 규모의 집단행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이를 받아줄 곳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8월 아이가 아프던 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오후 5시께 기침을 시작한 아이는 곧 열이 40도 가까이 치솟았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업고 간 동네 병원에서는 폐렴 기가 있다며 종합병원 입원을 권했다. 황급히 부산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으나 그곳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없었다.

권 씨는 소아전문병원인 양산 부산대 어린이병원으로 달려갔다. 2시간 검사 끝에 이 병원도 입원 진단을 내렸다. 폐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권 씨 가슴은 곧 철렁 내려앉았다. “파업 때문에 전문의가 없습니다. 경북대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북대병원은 경북 칠곡에 있다. 오후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경북대병원을 찾아도 진료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구급대를 통해 문의하니 경북대병원에 현재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지, 진료가 가능할지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권 씨는 서울로 가자고 생각하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서울에 도착하니 다음 날 오전 4시가 넘었다. 아이는 결국 서울에서 입원했다.

악몽 같던 그날을 기억하는 권 씨에게 전공의 집단행동은 또 다른 악몽이다. 권 씨는 “영유아는 병원에 가야 할 돌발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데 부산에서 몇 안 되는 진료 창구마저 막히니 막막했다”며 “제2 도시 부산 사정이 이런데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은 부산만의 일이 아니다. 2017년 신생아 집단 사망으로 의료진이 구속됐던 ‘이대목동병원 사태’ 이후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대폭 줄어들었다. 부산시도 올해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 선택 의사에게 100만 원 상당의 정주 수당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지원 의사가 별로 없다.

부울경에서 중증 소아청소년 응급의료가 유일하게 가능한 양산부산대병원도 인력난에 허덕인다. 부산대병원 응급실에 상주하는 정규직 소아응급전문의는 1명뿐이며 계약직 전문의는 3명이다. 4명으로 응급실을 24시간 7일 돌리는 상황이다.

권 씨는 부모들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답답해했다. 권 씨는 “응급실 뺑뺑이를 겪으니 직접 방법을 못 찾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처럼 의사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면 아이 가진 부모는 정말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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