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금리인하 물건너 가나…셈법 복잡해진 한은
높은 물가에 환율 불안
미국보다 앞선 인하 가능성 없어
23일 한은 금통위, 동결 확실시
“유가 100달러 넘으면 올해 인하 못할 수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일(현지시간) 추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여전히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당초 올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됐지만, 미국과의 정책금리 격차·고금리·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연내 금리를 먼저 내리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연준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현지시간)까지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5.25∼5.50%로 동결했다. 이에 따라 한국(3.50%)과의 정책금리 역전 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포인트(P)를 유지하게 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올해 들어 지금까지 경제 지표는 우리에게 (인플레이션이 2%로 향하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했다”며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종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 물가 상황과 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 진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우려한 더 강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나 조치는 없었다. 파월 의장은 “현 통화정책 수준은 긴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일축했다. 또 연준은 6월부터 월별 국채 상환 한도를 축소하는 등 유동성 흡수를 위한 양적 긴축(QT)의 속도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미 연준의 동결 결정에 따라 한은 금통위도 오는 23일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지난달에 이어 11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할 것이 확실시된다.
먼저 물가가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2.9%로 석달 만에 3%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유가와 과일 농산물 가격 탓에 목표 수준(2%)을 크게 웃돌고 있다.
불안한 환율 흐름도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낮출 수 없는 이유다. 시장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고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자 지난달 16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약 17개월 만에 1400원대까지 뛰었다. 특히 원화 가치가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할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관리에 어려움이 커진다.
가계부채가 최근 다시 급증한 것도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29일 기준 699조 1939억 원으로, 3월 말(693조 5684억 원)보다 5조 6255억 원 급증했다. 공모주 투자 등의 영향으로 신용대출이 6개월 만에 반등한 데다 신생아특례대출 수요도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달 1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위원은 “향후 (통화정책은) 미국 등 주요국 정책금리 방향, 물가 경로,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부채 흐름 등을 감안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통화정책의 주요 변수로 가계대출을 꼽은 바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연준과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도 갈수록 늦춰지는 분위기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은 9월, 우리는 11월 정도에나 금리를 낮출 것”이라며 “지금까지 휘발유 가격이 그나마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억제했는데, 이제 유가가 오르면 물가는 더 안 떨어지고 금리 인하 시점도 늦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만에 하나 유가가 100달러를 넘으면 한은은 올해 인하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도 “시장에서 미국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컨센서스(평균적 기대)가 형성됐지만, 늦춰질 개연성도 있다”며 “한은은 미국을 보고 10월, 11월 인하할 수 있지만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