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길찾기 앱을 지워라
뇌, 가장 위대한 내비게이션 / 크리스토퍼 캠프
길 찾는 과정은 중요한 뇌 작용
추상적 맥락 이해도에 큰 영향
내비 의존할수록 뇌 기능 저하
‘라때’는 종이 지도란 물건이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누구의 승용차이든 뒷자석 혹은 글로브박스엔 으레 전국 고속도로 지도 책자 한 권 정도는 비치돼 있었다. 지도를 보는 것은 늘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종이 지도를 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길을 갈 때 주변을 살피지도, 어디로 연결되었을지 모를 골목길로 발을 들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저 액정 위에서 반짝이는 화살표만 따라갈 뿐이다. 효율적이지만 재미는 줄었다. 작은 골목길에서 뜻하지 않게 꽤나 괜찮은 술집을 발견하는 일도 줄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것들이 우리가 애써 찾던 것들보다 으레 더 반짝이는 법이다.
이러한 때에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꺼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대착오(?)적인 책이 출간됐다. 반갑다.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다양한 길 찾기 솔루션)을 겨냥한 반달리즘의 근원에는 의외로 (인문학이 아니라) 뇌과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과학이라고 하니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보인다. “어머! 이건! 사야해~.”
<뇌, 가장 위대한 내비게이션>의 저자는 인간의 뇌를 거대한 지도 그 자체로 여겼다. 이 지도 속에서 ‘길 찾기’에 주로 관여하는 뉴런은 장소세포와 머리방향세포, 격자세포 정도다. 이 세 가지 뉴런은 길을 찾을 때뿐 아니라 무언가를 경험(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보든)할 때에도 그것을 뇌에서 지도처럼 그려낸다. 가령 과거는 현재보다 ‘앞’에 있고, 미래는 ‘뒤’에 있다. 상사는 내 ‘위’에 있고, 부하 직원은 ‘아래’에 있다. 내 친구는 단골식당 점원보다 더 ‘가까운’ 존재다. 세 뉴런은 이러한 ‘구조적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고 갱신하며 뇌 지도를 채워간다.
이러한 뇌 작용(길 찾기)은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길 찾기 능력이 4만 년 전 길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명운을 갈랐다고 말한다.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부터가 길 찾기 능력 덕분이었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을 떠나지 않았다. 호모사피엔스의 두정엽은 네안데르탈인보다 컸다. 두정엽은 공간능력을 관장하는 대표적인 뇌 영역인으로, 시간이나 수학적 개념 등의 추상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반인보다 큰 두정엽을 가졌다.
‘길치’들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다. 마치 자신의 ‘길치’가 진화의 부족에 따른 것으로 여겨질 수도.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 찾기 능력은 유전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크다. 뇌는 쓰는 만큼 좋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런던의 버스·택시 운전기사들에 대한 실험.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맥과이어는 버스와 택시 운전기사의 뇌가 서로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런던 전체의 복잡한 지리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택시 운전기사들의 해마는 눈에 띄게 컸다. 동일한 노선을 반복해서 운전하는 버스 운전기사들의 해마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해마는 장소세포가 많이 분포된 기억 중추다.
그래서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 찾기 능력을 약화하는 내비게이션을 꺼야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보고 길을 찾을수록 우리의 뇌는 기능하지 않은 채 침묵하게 된다. 그 결과 해마가 쪼그라든다. 이러한 손상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은 간단명료하다. 너 자신의 뇌를 사용해 길을 찾아라! 크리스토퍼 캠프 지음/홍경탁 옮김/위즈덤하우스/384쪽/2만 1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