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채 상병 사망의 진실을 알고 싶다
“우리 아이 어딨어요, 구명조끼는요”
평소 정치 이슈 관심 높지 않을지라도
채 상병 사건 특검 필요성 큰 공감대
지난 2일 야권 주도 국회 본회의 통과
정치 논리·대결 국민에겐 중요치 않아
무고한 장병 죽음 뒤 진상은 밝혀져야
평소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높은 편은 아니다. 매일의 바쁜 일상 탓에 정치 이슈가 멀게 느껴지는 것도 핑계 같은 이유가 되겠고, 가급적 그쪽과 거리를 두는 편이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가벼운 믿음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몇달 간은 정치 이슈가 꽤나 신경이 쓰였다.
지난 달 10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가 여느 때처럼 촉발제가 됐다. 고물가, 의대 정원 증원 사태,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으로 급부상했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 장병 가운데 한 명인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데서 시작한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렸다. 영상에서 아들의 실종 사실을 전해듣고 현장에 방문한 채 상병의 아버지는 “어떻게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애를 물 속에 보낼 수가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 아이 어딨어요. 걔 외동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요. 네?” 채 상병 어머니의 울부짓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후 진행 상황은 알려진대로다. 요약하자면,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이후 현장 조사와 장병 9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질의 조사를 거쳐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간부에게 과실치사혐의가 있다고 초동수사 결론을 내렸고, 이를 해군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대면 보고한 뒤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북지방경찰청에 이첩했다. 하지만 사건 이첩 과정에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은 갑작스레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경찰로 갔던 조사 기록은 곧바로 당일 저녁 다시 국방부 조사본부로 돌아왔다. 이 장관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리기 직전에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은 기록이 나오면서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국방부의 재조사에서는 사단장 등 6명이 혐의자에서 제외돼 대대장 등 2명으로 줄었고, 수사를 맡았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되레 집단항명수괴죄(이후 항명죄로 변경)로 기소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을 문제 삼아,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전 장관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면서 더디지만 현재까지도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의혹에 기름을 붓는 일도 있었다. 공수처 수사가 진행되고 있던 지난 3월 4일 이 전 장관이 난데 없이 호주대사로 임명된 일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까지 내려졌던 이 전 장관을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하자, 민심이 들끓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9월 8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했다. 특검 수사 대상은 크게 두 갈래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진상 규명과 사건 수사 과정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6일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당 의원 181명의 동의를 얻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졌고, 지난 2일 야권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과 함께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경우 오는 28일께 다시 한번 국회 표결이 진행되고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새로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두고 양당이 주장하는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에 따른 디테일한 근거와 논리도 있을 테지만, 그런 것들은 평범한 국민들에겐 잘 공감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좋겠다. 총선으로 민심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왜 또다시 정치적 셈법을 따지고 유불리를 논하고 권력 뒤에 숨으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꽃다운 청춘’ 채 상병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가 잘못해서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지시와 시스템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군도 나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고한 죽음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는 게 공정하고 상식적이다. 어떤 이는 적어도 국민이 한을 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어떻게 나라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오는 10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자회견을 예고한 윤 대통령이 소통과 수용의 자세를 보여줄지, 이목이 집중된다.
김경희 편집부장 miso@busan.com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