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다문화시대 울산, 공존만이 살길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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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수도 울산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거리에는 중국어와 영어 섞인 간판이 즐비하다.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조선업 호황을 맞은 동구는 올해 3월 기준 외국인이 8003명으로 울산에서 가장 많다. 울산 전체로 보면 3만 766명으로 3년 새 7000명이 불어났다. 경기 침체와 일감 부족으로 조선소 독(선박건조장)이 텅 비었다는 기사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6~7년 지나 딴판이 됐다. 산업현장의 실핏줄이 된 외국인들이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업과 자치단체도 외국인 끌어안기에 공을 들인다. HD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 최초로 사내에 외국인지원센터를 차려 통역과 고충 상담을 지원한다. 동구청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기초 생활 정보, 질서 등을 알려주는 ‘슬기로운 동구생활 설명회’도 외국인과 주민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사회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스리랑카 노동자와 가족 수백 명이 울산에서 자국의 설인 ‘싱할라-타밀 새해’(4월 13일)를 기념하며 고향 음식을 먹고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은 어쩐지 정겹다.

울산 현대모비스 농구단을 응원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목소리, 가자미회를 처음 먹어보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울산의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활력을 느낀다.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 혐오로 점철된 다문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여전히 짙다. 울산을 비롯해 전국 산업현장에서 숨지는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 11년간(2012~2022년) 한 해 평균 108명에 이른다. 사고재해율(2022년)도 전체 노동자(0.49%)보다 외국인 노동자가 0.87%로 높다. 경남 양산 한 제조업체 대표가 기계결함을 알고도 방치해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를 낸 혐의로 울산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자, 이를 중형으로 여길 만큼 우리 사회의 책임 의식은 미약하다.

지난달 19일에는 울산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가 체불 임금을 해결하라며 타워크레인에 올라 위태로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그의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봤다. 지난 5년간(2019~2023년)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액은 총 5670억 원이다.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며 가장 낮은 임금조차 제때 받지 못한다.

최근 충북에서 일명 ‘자국민보호연대’란 허울 아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폭행, 금품을 갈취한 사건은 공분을 자아낸다. 형태와 정도만 다를 뿐 부울경에서 이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동착취 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손이 급하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놓고 전후 사정은 무시한 채 기계적인 단속과 추방을 반복하는 악순환은 근절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고충이 더 큰 법이다.

다문화사회의 제반 문제를 다룰 이민청 설립 등이 국가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지역사회도 외국인과의 공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울산 총선 당선자 주요 공약에 이주노동자 지원책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유감이다. 다문화는 이제 포용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공존의 시험대에 오른 울산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산업계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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