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인종차별 저항… 아티스트 ‘슈트맨’ 부산 왔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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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 개국 다니며 사진 기록
부산 서면 편집숍 ‘발란사’에서
프로젝트 30주년 기념전 개최

슈트맨이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인형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발란사 제공 슈트맨이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인형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발란사 제공

정장을 입고 전 세계를 돌며 사진 작업을 벌인 아티스트 ‘슈트맨(Suitman)’이 부산을 찾았다. ‘슈트맨 프로젝트’ 3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까지 부산 인기 편집숍 ‘발란사’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념 전시가 열린다.

‘슈트맨’이라는 이름이 더욱 편한 김영(64) 씨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아티스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그곳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취미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새롭게 만난 인물,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사진을 지인에게 나눠주는 게 그의 낙이었다.

그는 1994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 ‘양복’을 극복하겠다며 ‘슈트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시작 이후 지금까지 양복을 입고 해외 150여 개국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 왔다. 검은 정장과 넥타이, 노란 선글라스는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캠핑을 가거나 자전거 수리를 하는 등 양복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적인 광고회사 ‘와이든 앤 케네디’를 떠났다. 그는 여러 국가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02년 미국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슈트맨 프로젝트' 사진. 발란사 제공 '슈트맨 프로젝트' 사진. 발란사 제공

2005년부터는 자신이 해외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을 계기로 아시아인의 얼굴을 촬영하는 ‘슈트맨 포트레이트(Suitman Portrait)’ 작업을 시작했다. “너희들(아시아인)은 우리한테 다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여”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에 싸움 대신 카메라를 든 것. 그는 검은 정장에 노란 선글라스를 낀 아시아인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 그들이 가진 개성을 드러냈다. 김 씨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매우 안 좋았고 싫었다”며 “그냥 무작정 화내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재밌게 미술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사진에서 그치지 않는다. ‘슈트맨 프로젝트’ 20주년 때엔 자전거를 타고 중국을 돌아다니는 자전거 투어를 기획했다. 그의 행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디젤’은 그에게 협업을 제안해 그의 여행 가방에는 디젤 로고가 붙었다. 그는 중국을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홍콩에서는 북한의 인민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비디오 아트를 시도했다. 2012년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연 그는 배달용 철가방에서 작품을 꺼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일본의 패션 브랜드 비즈빔을 포함해 다양한 해외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을 진행했다.

김 씨는 ‘슈트맨 프로젝트’ 30주년을 맞아 지난 3월부터 부산의 인기 편집숍 발란사와 협업해 전시를 진행 중이다. 굿즈샵도 마련돼 그의 이미지를 소재로 한 티셔츠, 피규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홍콩 출신인 그의 아내도 ‘타이거 레이디’라는 브랜드를 통해 영화, 음식과 함께 홍콩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2일까지 이어진다.

김 씨는 “아직 다음 목적지를 정하진 않았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계속 여행을 떠날 것”이라며 “이 전시가 젊은 청년들에게 자극을 주고, 청년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슈트맨 프로젝트' 전시가 진행 중인 편집숍 ‘발란사’ 모습. 발란사 제공 '슈트맨 프로젝트' 전시가 진행 중인 편집숍 ‘발란사’ 모습. 발란사 제공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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