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팬지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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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원(1950~ )

하루하루 눈물방울로 꽃을 피우는 월셋방 우리 집이 얼음덩이 속에 사는 에스키모보다는 더 행복할 거라고 딸애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울면서 기도하였어요.

때로는 거지옷 입은 개그맨과 신데렐라 공주가 함께 출연하는 흑백 TV에 나온 적도 없는 아빠는 〈바본가 보다, 바본가 보다〉며 까르르 놀려대더니 딸애는 풍선을 불며 뒷산으로 가 버렸어요.

세모꼴 다섯모꼴의 찌그러진 별들과 나뭇잎과 흙, 볏짚으로 쏘아올린 꿈 속의 우리 집 그리고 몇 년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젖가슴과, 또 그런 것들이 꽃바구니에 가득 그려진 빨간 풍선을 하나 들고, 심심한 아홉 살 딸애가 떠나버린 자리에는 딸애 얼굴 같은 팬지꽃 한 송이가 저 혼자 피어 있었어요. 그것도 목이 쉬어 피어 있었습니다.

-시집 〈팬지꽃으로〉(1987) 중에서

슬픔이 맑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시라서 그럴까? 아니다. 좀 더 엄밀히 들여다보면 어린아이의 슬픔이 천진난만하면서도 애잔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그렇다. 슬픔은 하염없는 눈물로 우리의 흐린 마음을 씻어 낸다.

엄마를 잃고 아빠와 가난하게 사는 어린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까? 그 아이의 하루하루는 ‘신데렐라’, ‘개그맨’ 등이 나와 노래하고 이야기해 잠시 서러움을 잊기도 하겠지만,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까르르 놀려댈’ 웃음을 짓기도 하겠지만, 슬퍼라, 채울 길 없는 허기에 늘 그늘이 져 있었으리라. 그것을 보는 아빠 또한 여린 ‘팬지꽃으로’ 시들어 가는 딸의 모습을 처연히 바라보아야만 하였으리. 하여 ‘목이 쉬어 피어 있는’ 팬지꽃은 얼마나 눈물 나는 아픔이랴, 얼마나 눈물 나는 그리움이랴!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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