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범일동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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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부산 산업 1번지에서 상업 중심지로
중국 e커머스 공략 등에 상권 직격탄
거대한 변화에 맞서 새 해법 찾아야

지난 3월부터 5월 초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부산 동구 범일동을 돌아보았다. 범일동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몇 시간씩 돌아보는 것이었으니 제법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범일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사람이 함께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관찰의 밀도를 높여 주었다.

갑자기 범일동을 이렇게 여러 차례 다녀 보게 되었던 것은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요청받은 연구를 위해서였다. 맡은 분야는 다르지만, 참여했던 연구자들과 같이 둘러보면서 범일동의 과거를 회고하고 현재를 진단해 보았다. 범일동은 한때 ‘부산 산업의 1번지’로 불렸다. 영도가 부산의 1세대 공업지역으로서 일제강점기의 경제를 대표하였다면 범일동은 한국전쟁에서 경제개발 초기 부산 공업을 이끈 2세대 공업의 중심지였다.

물론 지금 범일동은 부산 경제의 중심지는 아니다. 조선방직과 이름을 대면 지금도 기억나는 큰 기업들이 있었던 시대가 전성기였다. 그러나 조선방직의 해체 이후에도 범일동은 부산의 대표적 상업 중심지로 변신하였다. 조선방직이 있던 자리에 시외버스와 고속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경남과 경북지역 사람들도 범일동에서 쇼핑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했다. 오랜만에 여러 차례 둘러본 범일동의 시장은 겉모습은 똑같아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가번영회 분들과도 상당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결같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렇지 않다는 대답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줄어들었던 매장 방문객들이 몇 년 사이에 익숙해진 온라인 쇼핑을 팬데믹 이후에도 주요 구매 방식으로 계속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학생들과의 이야기에서 전자상거래가 얼마나 우리 주변에 깊숙하게 파고들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책을 사는 방법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함께 웃은 적이 있다. 나는 온라인에서 검색을 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직접 구입하는 편이다. 학생들은 물론 그 반대이다.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온라인에서 구입한다.

흔히 온라인 쇼핑이라고 부르는 e커머스는 국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의 약진과 공습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팬데믹 기간 쌓인 과잉생산에 골머리를 앓던 중국이 e커머스를 통하여 해외로 상품을 털어 내고 있다. 흔히 과잉생산은 재고 때문에 경영에 압박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더러는 과잉생산을 저가 공략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현재 중국이 쓰는 방법이 후자에 가깝다. e커머스도 수출의 한 방식이라는 입장에서 중국 정부도 은근히 지원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중국 전자상거래의 터무니없는 가격은 단순히 시장뿐만 아니라 국내의 산업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싸기 때문에 또는 호기심으로 구입하고 있지만 그것의 누적적인 영향은 굉장히 파괴적일 수 있다. 이런 위협이 이미 몇 년째 되어 가는 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이에 대한 언급조차 아직 없다.

조선방직의 해체 이후에도 몇 차례 큰 변화를 겪어 온 범일동 앞에 또다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음을 여러 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부산시가 광역시가 되던 1995년에 부산에 진출하였던 현대백화점이 조만간 업태를 변경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롯데와 함께 향토백화점들을 초토화한 현대백화점도 치열한 경쟁과 시대의 흐름을 피해 가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가구거리는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고, 인구 감소와 늦은 결혼의 영향은 한복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범일동의 주요 상징의 하나인 공구상가에도 문을 내린 가게들이 한두 개 눈에 들어왔다. 그러잖아도 해외 직구를 검색하면서 알아본 중국 e커머스의 터무니없는 저가 공구들이 갑작스레 생각이 났다.

그래도 범일동은 범일동이다. 무엇보다 범일동은 조방앞이다. 비록 조방낙지와 돼지국밥 골목도 줄어들고 북적거리던 예식장도 볼 수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범일동은 그래도 건재했고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바람을 거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변화에 맞서는 해답들을 찾아야 하는데 이번의 변화는 너무 큰 것 같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을 견뎌온 범일동은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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