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원전, 해체 전 오염제거 첫발 뗐다
7일 방사성 물질 제거 작업 착수
해체 전 피폭 저감 위한 준비 활동
국내 최초 시도로 국산 기술 확보
제염 다 마치면 원안위 해체 승인
국내 최초 원전 해체 작업이 첫발을 뗐다. 이로써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건설, 운영에 이어 해체까지 원전 산업 전주기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1호기 터빈홀 내 대형 열교환기마다 모두 노란 ‘영구 정지’ 딱지가 붙어있었다. 원전에서 작업자들이 실수로라도 기기를 재개하는 일을 막기 위해 미리 조치를 취해 놨다. 운영이 멈춘 열교환기를 비롯한 내부 설비는 벌써 녹이 슬고 손때가 역력했다. 40년간 쉼없이 전력을 생산해 각 가정과 거리를 밝히고 공장이 돌아가게 한 이들 설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고리1호기는 한국 최초 원자력발전소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다. 첫 상업 운전은 1978년 4월 시작됐다. 그러다 영구 정지 조치에 들어간 때가 2017년 6월 18일이었다.
2024년 5월 7일 역시 고리1호기 역사에 중요한 시점이 됐다. 이날 고리1호기는 국내 첫 원전 해체 기술 확보를 위한 첫 단계인 ‘제염’ 작업에 돌입했다. 제염은 원전에 있는 방사성 물질을 화학약품으로 제거하는 작업이다. 본격적인 해체에 돌입하기 직전 단계로, 해체 작업자의 피폭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해체할 수 있도록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원자로 냉각제, 배관 등 고리1호기 내부 설비에는 40년간 방사성물질이 쌓였다. 제염 단계에서는 과망간산, 옥살산 등 화약약품을 주입해 이 방사성물질들을 녹여 낸다. 그러면 방사성물질을 기존의 30분의 1 수준으로 제거하고 폐수지 발생량을 8.5㎥ 이내로 낮출 수 있다.
오는 9월 제염 작업이 완료되면 발전소 건물 철거에 돌입할 수 있다. 제염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체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제염 자체는 사전절차에 해당하지만, 기술적 공정에서는 꼭 필요한 해체의 첫 단계다. 한수원은 제염 작업이 완료되는대로 내년 상반기 중 해체 승인을 받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번 제염 작업을 상당히 중요한 단계로 보고 있다.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기술과 장비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해체 제염 작업은 원전 건설과 운영부터 해체까지 원전 산업 전주기의 기술을 국내에서 확보하기 위한 단계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수원은 이번 경험을 통해 원전 해체 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원전 해체시장에도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영구 정지한 원전은 전 세계에 209기가 있는데 이 중 21기만이 완전히 해체됐다. 통상적으로 원전의 가동 수명은 30년으로, 이 기준에 따라 IAEA는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을 영구 정지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는 500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시장이다. 원전 해체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 일본, 스페인 등 6개국이 전부다. 한국 역시 이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이날 착수 기념식에서 “원전 해체는 원전 산업 전주기 과정의 완성이며, 원전 해체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의 무대”라며 “고리1호기 해체 경험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 글로벌 해체 시장으로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김진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전략기획관은 “원전 생태계가 발전하고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원전 건설이나 운영 같은 선행주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전 해체와 방폐물 관리와 같은 후행 주기 산업도 본격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면서 “수백조 원에 이르는 원전 해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험과 기술을 빨리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수원은 2021년 5월 최종해체계획서를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원안위가 심사를 거쳐 해체 승인을 내리면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가 반출되고, 비방사성 구조물부터 방사성 구조물 순으로 건물이 철거된다. 최종적으로 원전 부지가 나대지로 복원되는 것이 해체 작업의 완성이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