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관 중인 미술관 로비에서 '다시 만나기' 마지막 콘서트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리노베이션 위해 운영 중단한
부산시립미술관 마지막 행사
4명 작곡가의 창작곡을 초연
미술 작품을 음악으로 재해석
2026년 ‘융복합 공간’ 재개관
미술관에서 음악과 미술이 융합되는 실험을 시도했다. 같은 영상 작품을 보고 난 뒤 네 명의 작곡가는 각각 곡을 썼고, 이것을 미술관에서 초연한 것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장면도 아니다. 1998년 개관 이후 25년 만인 올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는 부산시립미술관(BMA)이 마지막 스테이지로 현대 미술과 현대 음악을 느끼고 감상하는 ‘로비 콘서트’를 선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7일 오후 5시 BMA 본관 2층 ‘2024 로비 콘서트-공간, 깊이 나누기’ 현장.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BMA후원회 (사)비마엔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종호 센텀종합병원 이사장, 부산메세나협회 화승코퍼레이션 현지호 부회장, 시민 관람객 등 100여 명이 모였다. 예정에 없던 박형준 부산시장도 자리해 무게감을 더했다. 이들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아쟁이 따로 또 같이 연주하는 현대 창작곡을 들으며 시립미술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게 됐다.
창작곡 연주는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멤버들이 맡았다. 이날 음악회 모티브는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인 전준호(55) 작가의 2007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하이퍼리얼리즘(형제의 상)’ 단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53초)이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이 조형물은 한국전쟁 시기 남한의 국군 장교로 참전한 형과 조선인민군 병사로 참전한 동생이 한 전투에서 재회하는 순간을 소재로 삼았다. 전 작가는 특히 오랜만에 만난 형제가 서로 감격의 재회를 누리지 못하고, 홀로 허공을 안은 채 왈츠를 추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분단국으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화해의 소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했다.
이 작품을 재해석한 창작곡을 써낸 네 명의 쟁쟁한 작곡가는 장석진, 배동진, 한대섭, 안성민이다. 안성민은 비올라와 첼로를 사용해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를 선보였고, 한대섭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워크(Walk)’, 배동진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이어 클라리넷까지 넣은 ‘백 앤 포스(bank and forth)’, 장석진은 아쟁,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솔저 인 화이트 그라운드(Soldiers in White-Ground)’를 각각 작곡했다. 연주 시간도 4~5분짜리가 있는가 하면 11~13분에 이르는 곡도 있었다.
작곡가들은 ‘두 형제’가 가진 내적 아픔에 주목하면서도 각기 다른 악기와 음계로, 작품을 표현했다. 상징과 은유, 풍자로 드러난 현대 미술에 비해 현대 음악은 좀 더 비극적인 느낌으로 발현됐다. 특히 장석진 곡이 연주될 때는 전 작가 영상이 함께 화면에 송출됐는데 낮은 음색의 첼로와 아쟁, 콘트라베이스가 오열하는 듯 묵직하게 빚어낸 음악에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현대 음악이 가진 특징이자 단점 중 하나인 난해함이 먼저 감상한 미술 작품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진 면도 없지 않았다. 현대 미술과 현대 음악의 만남이 여러모로 재미난 실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하고많은 소장품 중에서도 전 작가를, 전 작가 작품 중에서도 ‘하이퍼리얼리즘’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전 작가야말로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의 작가상’을 비롯해 세계 3대 비엔날레에 모두 초청되는 등 ‘미술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부산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란 점에서 더욱 자랑하고 싶었고, ‘하이퍼리얼리즘’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열린 해석과 변주가 가능한 작품이어서 미술과 음악의 융복합을 시도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음악회에 참석한 전 작가는 “부족한 작업에도 훌륭한 연주자와 작곡가를 연계한 행사를 시립미술관과 후원회에서 마련해주셔서 감개무량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전시 공간 미술관이 시간의 예술 음악을 만나, 더욱 웅숭깊어졌다. 약 1년 반 뒤에 모습을 드러낼 미래형 융복합 미술관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졌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