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북극항로’의 꿈, 점점 멀어져 가나?
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일이 꼬여도 몹시 꼬여가는 분위기다.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 않나 한다. ‘부산~북극항로’ 이야기다. (사)유라시아교육원은 최근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과 공동으로 북극 해역의 인문·경제를 다루는 시민특강을 진행하였다. 부산항과 북극항로의 연결 전망과 시사점, 러시아의 극동 개발과 사할린 에너지 정책 등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 경제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지난 2년간 심하게 틀어져 버린 한러 관계를 우려하면서, 이 좋지 못한 분위기가 특히 부산의 북극항로 진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한결같이 걱정하였다.
세계 3위권의 컨테이너 항만을 가진 부산은 대서양, 태평양, 아시아, 유럽 항로를 모두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북극항로까지 보태지고 이 새로운 길을 부산 신항 개발과 항만 배후단지 조성,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 등과 연동할 수만 있다면, ‘낙후한’ 도시를 일거에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대박’을 맞이할 수도 있다. 북극항로 중에서도 러시아 해안을 따라가는 북동항로는 부산이 단순한 환적항의 수준을 넘어 국제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유럽으로 가는 물자의 수송 기간을 대폭 줄이고 물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면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동북아 해양수도로서의 부산’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국제도시 도약 꿈
북극항로가 기회 될 수도
북극권 영향력 절대적인
러시아의 협력 전제돼야
현 정부 반러 정서 걸림돌
부산 자체 대응 전략 필요
그런데 이런 꿈을 꾸기 위해서는 한 가지의 조건이 있다.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는 1916년부터 북극권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1996년의 오타와 선언 이후에 북극 인근의 8개국으로 북극 이사회가 만들어져 있다지만 이 동토의 땅에선 미국도 캐나다도 힘을 못 쓴다. 북극의 ‘대주주’는 북극 연안의 50% 이상을 가진 러시아다. 한국, 일본 등 13개국과 25개 비정부기구로 이뤄진 ‘옵서버’ 회원들은 반드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서만 북극 논의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은 거의 경악할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총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러시아를 맹비난하며 안보리 개혁까지 언급했다. “그동안 이어온 30년 우정을 아예 버리지는 말자”라며 푸틴이 내민 작년 말의 관계 복원 손짓에도 대통령실은 대러 수출통제 품목의 확대로 맞섰다. 정부의 입인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지칭하며 국제사회를 오도하고 있다”라고 불필요한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국방부 장관은 아예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직접 공급과 대러 적대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문화와 국제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난달에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내한 공연까지 대러 제재 운운하며 막았다.
국제사회에 영원한 적과 친구가 어디 있으며, 있다면 국익을 위한 신중한 처신과 균형 외교가 있을 따름이다. 일본은 이렇게 처신 안 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한미 동맹에 목을 매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제재하지만, 경제적으로 손해는 안 본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친미 친서방 행보 속에서도 자국 액화가스(LNG) 수입의 8.8%를 차지하는 ‘러시아 사할린 2 프로젝트’에서 일본 회사들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얻을 이익은 챙겨가며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북극에서 가져올 막대한 이익에 대비하여 북극항로를 아예 ‘빙상 실크로드’라고 이름 붙이고, 북극 과학기지에 무려 500여 명의 상주 인력을 파견시켜 놓고 있다.
침략은 침략이고, 한미 동맹은 동맹이며, 국익은 국익이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지금처럼 편향외교, 편중외교를 계속 이어 나가다간 경제적으로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대러 적개심을 끊임없이 표출하는 한국 정부를 러시아 정부가 2022년 3월 7일에 발표한 ‘비우호 국가 명단’에서 빼줄 리 없고, 우리의 식탁에서 머지않아 러시아산 명태와 게가 사라질 수도 있다. 한국의 북극항로 참여가 완전히 물 건너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만이라도 정신 차리자. ‘북극 협력 주간 행사’나마 부산에 계속 유치하며 북극권의 러시아 지방정부와 지역 협력 네트워크를 계속 갖춰 나가고, 해운 항만 물류, 수산기술, 자원과 에너지 개발 역량 등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거의 휴면상태로 보이는 부산연구원의 북극 전략수립 기능을 종전처럼 회복하고, 북극 비즈니스 발굴, 북극권 인문사회 연구, 북극 전문가 양성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가며 상황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