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그래도 그때 그 시절, 추억이 되게 하는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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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회상'

이태호 '회상'.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이태호 '회상'.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이태호는 근대화단을 풍성하게 만들고 천재 화가란 소리를 들었던 이인성(1912~1950)을 기념해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을 2015년에 수상했다. 그의 ‘회상’은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흑백이다. 다만 킨(Kin) 사이다와 수건에 있는 줄무늬만 푸른색이다. 그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목탄과 먹으로 종이에 그린 흑백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1981년 작품 ‘회상’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이다.

1980년대 초반, 카메라 보기가 조금씩 쉬워져 ‘필름’이라고 큰 간판이 걸렸고, 여러 지역에서 산업화에 앞뒤 없이 매진하던 시대였다. 살림은 조금씩 풍요해지고, 물질은 넘치기 시작했다. 막 세상의 논리를 깨우치고 세상의 부조리를 열정으로 지적하던 세대가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그 뜨거운 용광로 같은 시절에 한 모금 마셨던 청량한 사이다를 회상한다.

우리 민족이 이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 소식도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수많은 세월이 지나 이제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잘살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생기던 시절 그래도 대부분 우리는 순진했다. 막 머리를 깨우친 우리에게, 세계의 산업을 지배한 외국 기업은 자신들의 물건을 우리도 모르게 들이밀었다. 그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들을 비판했다. 왜냐하면 킨(Kin) 사이다는 공룡기업인 ‘코카콜라’에서 한국 소비자만을 위해 개발한 음료수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을 벌인 히틀러는 지상과제로 코카콜라를 대체할 음료수 개발을 지시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코카콜라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로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팔리던 시장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환타’였고,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그때그때 있는 재료로 만들어 여러 맛으로 생산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로 들어간 코카콜라는 환타를 인수하고 ‘스트라이프’라는 청량음료를 개발한다. 환타의 자매품으로 만든 것이었다.

코카콜라는 이것을 변형해 한국만을 위한 상품 ‘킨(kin) 사이다’를 내놓았다. 이제 이태호의 ‘회상’에서 테이블에 놓인 초록 병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필름을 봤다면 기억할 것이다. 사진기에서 꺼낸 필름을 현상하고 나면 ‘회상’처럼 흑백으로 전이되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온전히 회상할 수 있다.

모처럼 휴일에 공장에 다니는 여직공들끼리 어디 해변에 놀러 가서, 야외 테이블에 사이다 몇 병 올려놓았다. 그리고 생각난 듯이 서둘러 사진을 찍은 것이다. 다정하게 어깨동무도 하고 말이다. 네거티브인 필름에서는 슬픔도 기쁨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김경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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