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도심 고도제한 완화, 도시균형발전 취지 잘 살려야
산복도로 쇠락 막고 정주 환경 개선해야
난개발 기승, 원주민 쫓겨나는 개발 안돼
부산시가 50년 넘게 유지되던 원도심 고도제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부산 동·중·서구에 걸친 망양로 산복도로 주변은 해안조망과 도시미관 보호를 목적으로 1972년 최고고도지구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는 물론 주택 노후화와 빈집 증가를 비롯해 인구 소멸까지 부추긴다면서 제한을 풀어달라는 민원을 꾸준히 제기했으나 부산시는 난개발 우려를 들어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한데, 북항재개발 및 저지대 상업지구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고도제한의 근거였던 바다 조망권 논리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기초지자체 용역 결과 등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부산시가 장기 도시계획 규제의 전면 재검토에 나선 것이다.
부산시는 완화를 최종 결정하기에 앞서 고도지구 지정의 당초 목적이 훼손됐는지 여부를 따지고 해안조망과 도시경관 변화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도제한 규제로 망양로 아래쪽 건축물 최고 높이는 망양로 노면 이하로 제한됐는데, 실제 타당한 제한인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별적으로 고도지구 존치·완화·해제 여부가 결정된다. 이번 고도제한 완화 검토 대상 지역은 동구 범천로에서 서구 서대신 교차로에 이르는 망양로 구간을 비롯해 부산진성, 수영사적공원, 충렬사 등 역사문화환경보전지역 주변 23곳이다. 부산시는 오는 7월 재정비된 도시관리계획을 열람공고할 계획이다.
이번 부산시의 장기 도시계획 재검토는 도심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시의성과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부산 중·동·서구를 잇는 산복도로는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부산의 신산스러운 현대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하나, 오랜 규제 탓에 정주 환경이 열악해지고 젊은 세대가 떠나는 곳이 되다 보니 슬럼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쇠락하고 있다. 이번 고도제한 완화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 소멸을 막겠다는 취지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 과제는 정주 환경을 정비하고 나아가 부산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간직한 관광자원으로서 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민관이 힘을 합치면 된다.
문제는 규제가 풀리면서 난개발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다. 부동산 개발 수익이 판치는 복마전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고급 주택 단지나 오피스텔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업시설만 잔뜩 들어서면 오히려 정주 환경이 나빠질 수도 있다. 북항재개발로 일부 조망권이 사라졌지만 전체가 그렇지 않은 만큼 고도제한 규제가 풀리는 과정과 방식은 합리적이며 세밀해야 한다. 과도한 규제를 풀면서 동시에 도시균형발전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 이번 도시관리계획 정비의 핵심이라는 점, 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