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사법원 설치 앞당길 방법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부산 등서 설치 운동 10년 가까이 지속
21대 국회서 관련 법안 논의조차 안 돼
홍콩 등에선 해사 사건 특별하게 처리
우리도 적용, 수요자 신뢰 확보 나서야
수출입 화물을 싣고 나르던 선박이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 화물이 손상된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때론 분쟁도 생긴다. 분쟁을 풀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재를 통한 해결이다. 당사자가 중재인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해 그 판정에 따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 사법기관인 법원의 재판을 통한 해결이다. 그런데 판결을 내려주는 재판부가 특별하게 사건을 취급할 때도 있다. 그래서 법원은 행정법원, 가정법원, 도산법원과 같은 전문법원을 만들어 재판부의 전문성을 보강해 운영한다.
해사법원 설치 운동은 해사 사건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전문법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법원은 ‘해사 사건은 특별히 다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전담재판부를 설치한 것이 좋은 예이다. 1990년대부터 국제 거래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 국제 거래 사건은 국제물품 매매에서 발생한 사건을 담당했다. 국제 거래에 해사 사건을 포함해 왔다. 선박 충돌이나 오염 사고는 국제 거래가 아니라 고유한 해사법의 문제다. 그래서 해상 변호사와 해상법 교수들이 국제 거래와 해사는 다르기에 분리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6년 해사 사건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부산지방법원에 해사, 국제 거래, 중재를 함께 처리하는 전담재판부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전담재판부가 설치된 지 몇 년이 지나도 해사 사건이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곤 했다. 이에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해사 사건에 대해 별도의 사건명을 받는 운동을 펼쳤다. 2021년부터 받은 손해배상 ‘해’라는 사건명이 그것이다. 사무국에서 배당할 때 해사 사건 전담재판부에 이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명 기재 제도를 통해 해사 사건은 전담부에 더 집중되게 된다. 이와 같이 대법원과 학계와 전문가들은 꾸준하게 해사 사건을 전문 판사들이 별도로 처리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왔다.
한편으로는 부산, 인천, 서울에서도 해사법원 설치 운동이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20대에 이어서 21대 국회에서도 해사법원 설치 법안은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독립된 전문법원을 만들 만큼 사건 수가 많지 않고 수요자들의 요구가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사 사건 분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용선계약 분쟁은 계약서에 중재로 처리하기로 약정이 되어 있다. 외국 당사자가 끼게 되면 영국이나 싱가포르의 해사 중재로 간다고 정한다. 대형 선박회사의 경우 법무보험 담당이 20명이 넘지만, 이 가운데 90%는 영국과 싱가포르와 일을 한다.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사건 수는 더 줄었다. 외국에서 처리되는 것에 익숙해진 수요자들이 국내 해사법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다. 해사법원의 설치를 위해서는 수요자들이 그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담재판부를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영국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은 독자적인 재판 규칙을 가지고 해사 사건을 특별하게 처리한다. 이를 우리나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의 해사 사건 전담재판부 기능을 강화하는 특별한 해사 사건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이 규칙에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담자. 우선 해사 사건 전담부 판사는 해사법에 정통하고 경험 있는 전문법관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선박 가압류의 경우 휴일엔 가압류가 되어도 쉽게 압류에서 풀려나도록 해야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런 제도를 두고 있다. 영어로도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이 일방 당사자가 되는 사건도 많기 때문이다. 각 법원에 신청되는 해사 사건은 모두 해사 사건 전담재판부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이런 규칙의 내용이 만들어지고 실행된다면, 수요자의 신뢰를 더 얻게 될 것이다. 외국으로 가는 사건이나 중재 사건을 우리 법원으로 가져오면서 사건 수를 늘려야 한다. 우리 법원이 비교 우위에 있다는 점을 우리나라 수요자는 물론이고, 외국 수요자들에게도 꾸준히 알려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건이 더 많아지면 전담재판부가 자연스럽게 명실상부한 독립된 해사 전문법원으로 승격될 것이다. 2018년에 설치된 도산 전문법원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해사 전담재판부와 국제 거래 재판 전담부 담당 사건을 하나로 묶어 해사법원 관할로 하자는 안도 탁견이다.
22대 국회에서는 해사법원의 설치 운동을 펼치면서도 현재 설치돼 운영하는 해사 전담재판부를 더 강화해 사건 수요를 늘리고 수요자들의 신뢰를 확보하자. 이렇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해사법원 설치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