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국회 레임덕 회기의 생산성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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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서울정치부 차장

총선 이후 차기 국회 개원 전 열리는 임시국회는 ‘레임덕’ 회기라고 불린다. 재선에 실패한 의원의 회의 참여율이 낮고 여야 정치권도 주요 현안을 차기 국회로 미루기 때문에 레임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5월 임시회도 레임덕 회기다.

21대 국회 레임덕 회기는 유난히 ‘생산성’이 낮다. 마지막 본회의를 한 차례 남겨둔 현재까지 5월 임시회 본회의 통과 법안은 단 2건(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이다. 이는 ‘동물 국회’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20대 국회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20대 국회 레임덕 회기에는 200건이 넘는 법안이 처리됐다.

20대 국회 레임덕 회기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보상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처리됐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처리됐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재석의원이 110명대로 떨어져 의결정족수를 채우기위해 재투표를 두 번이나 했지만 결국 현안 법안을 처리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레임덕 회기가 있는 미국의 경우 ‘역사적인’ 법안을 처리한 사례가 있다. 미국 의회는 1875년 레임덕 회기에서 숙박시설 등에서 흑인차별을 금지하는 시민법을 통과시켰다. 1974년에는 연방 정부의 개인정보 처리 행위를 규율하는 프라이버시 법을 통과시켰다. 1950년 미국 의회의 레임덕 회기에서는 6·25전쟁이 쟁점이 됐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중요한 기로에 서자 맥아더 장군은 의회에 유엔군에 ‘완전히 새로운’ 전쟁을 맞게 됐다고 경고했다. 당시 레임덕 회기는 6·25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미국 의회의 레임덕 회기는 일반 회기에 비해 생산적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1974~2008년 미국 하원의 레임덕 회기에 통과된 안건은 전체 2년 임기 동안 통과된 안건의 18%에 달했다. 레임덕 회기 기간이 전체 임기의 4%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높은 생산성이다. ‘역사적 법안’의 처리 가능성은 레임덕 회기가 오히려 높다는 분석도 있다. 의회를 떠나는 정치인들이 정치적 부담에서 자유로워져 ‘역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에도 의원들의 역사적 선택을 기다리는 법안이 많다. 여야가 집중하는 채 상병 특검법 이외에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를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등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각 원전에 쌓여있는 사용후 핵연료를 처리할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법안이다. 고준위 방폐물인 사용후 핵연료는 2023년 12월말 기준 경수로 원전에서 약 9304t, 중수로 원전에서 9621t이 발생해 5개 원자력발전소 부지에 저장돼 있다. 처리시설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발전 원전에 대한 위험과 방사성 폐기물 위험을 동시에 부담하는 상황을 끝낼 수 없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국민연금법 개정도 미래세대를 위해 시급한 현안이다.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공청회, 공론화토론 등을 거쳐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소득대체율에서 2%포인트의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법안의 처리를 위해선 정치인들이 정치적 생존 대신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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