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 정치권, 전창진 감독에게 배워라
속공과 지공 판단하는 완급 조절 능력
부산과 KCC에 연고 이전 첫 우승 선사
서둘렀지만 성과 미진한 글로벌허브도시
더뎌도 확률 높은 현안 해결 능력 기대
부산에 새로 둥지를 튼 프로농구 부산 KCC가 27년 만에 시민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야멸차게 부산을 버리고 수원으로 떠난 KT를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1패로 무릎 꿇렸다. 그래서 더 통쾌하고 값진 승리다.
부산 KCC의 쾌거는 명장 전창진 감독의 탁월한 용병술 덕분이다. 그는 혹독할 정도로 선수단을 몰아붙여 강한 체력과 빡빡한 수비를 주문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습 상황을 유도해 내는 트랜지션 플레이의 대가다. 그러나 득점 확률이 높다고 역습과 속공만으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일. 화통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 감독은 지공 상황의 지능적인 패턴 플레이를 잘 만들기로도 유명하다.
야구가 기세의 스포츠라면 농구는 완급의 스포츠다. 전 감독이 연고지를 옮기자마자 부산에 우승 트로피를 선물할 수 있었던 건 속공과 지공 상황을 가려가며 경기의 완급을 지배한 덕이다. 속공 상황에서는 폭풍처럼 몰아치지만, 일단 상대가 수비 진용을 갖추면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팀원 간에 약속된 패턴으로 득점 확률 높은 플레이를 펼친다.
지금 부산 정치권에는 돌아온 명장의 돌아온 완급 조절 능력이 절실하다. 대대적인 현역 물갈이로 이달 말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의욕에 불타는 초선 의원들이 많지만 아쉽게도 부산의 현안은 현재 속공 상황이 아니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의 21대 국회 내 처리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이제는 물리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했다. 결국 22대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할 판이다. 이미 ‘중앙 부처’와 ‘수도권 여론’이라는 상대 팀은 이미 백코트해 골밑으로 가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을 기세다.
부산은 수도권 밀집이라는 망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남부권 경제의 새로운 축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 도시의 시대적 사명이다. 온 나라가 나서서 월드엑스포 유치를 기원했고, 이후에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민심 달래기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의적절한 성장동력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다. 부산시와 정부가 차선책으로 내놓은 게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다. 엑스포 불발 이후 동정 여론과 윤석열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약속이 있었던 터라 부산은 속공을 선택했다. 범정부 TF를 꾸려 올해 상반기 안에 법안을 만들어 발의하겠다며 빠르게 이를 밀어붙여 왔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여소야대 국면이 시작되자 중앙 부처는 언제 그런 논의를 했냐는 듯 딴청을 피운다. 인천도 판박이나 다름없는 글로벌경제거점도시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 입장에서는 선뜻 요란한 특별법 추진이 망설여지는 대목이다.
22대 국회에서 부산 정치권은 부산의 열망을 구현할 다른 루트나 논리를 찾아내거나, 다양한 대야 협상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지공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올해 초처럼 정면 돌파만 고집하다간 수도권이나 중앙 부처의 논리에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지역에서조차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이 중앙 부처의 칼질로 선언적인 형태의 빈껍데기 전락했다며 전 분야에 걸친 특례를 요구하기보다 복합리조트 등 굵직한 현안부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실제로 일부 야당 인사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과정에서 부산 정치권이 지나치게 강공 일변도였던 것이 자충수가 됐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규모 2차 공공기관 전면 이전과 발맞춰 명분을 쌓거나, 산업은행급의 별도 공공기관 이전을 호남과 병행하는 유연함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지공 상황을 맞은 부산 정치권은 이 같은 지역의 열망을 수집해 특별법 제정의 공격 전술을 재고해야 한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분산에너지법 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큰 틀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 원자력발전소라는 혐오시설을 안고 수십년 간 소비량보다 곱절 많은 전력을 생산한 지역이 줄곧 전기만 소비하는 수도권과 전기요금이 같아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다들 눈뜨고 있다. 전국의 원전 밀집지역과 연대하는 한편 전기요금 인하가 곧바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산업계 여론까지 더해 지능적인 패턴플레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빠르고 화끈한 속공은 팬을 열광케 한다. 개원만 손꼽아 기다리는 부산의 국회의원도 속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부산 시민이 바라는 정치 플레이는 빠른 속도와 전개가 아니라 확실한 득점이다. 거기에 내가 부산 현안의 1옵션 공격수라는 책임감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권상국 정치부 차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