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첫 미술 그룹 토벽회, 김종식 화가 작업실서 태동”
김헌 김종식미술관 이사장
부산근현대역사관서 밝혀
“수십 년간 폐가 방치해서야”
부산 지역 최초의 미술 그룹인 토벽회(土壁會)가 중구 대청동 김종식 화가의 작업실에서 태동했다는 흥미로운 증언이 나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1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에서 기획 프로그램으로 열린 ‘대가(大家)의 2세들’에 초청된 김헌 김종식미술관 이사장을 통해 알려졌다. 김 이사장은 김종식 화가의 장남이다.
김 이사장은 “김종식 화가의 대청동 자택 겸 아틀리에에서 토벽회가 태동했다. 토벽회의 제1 발제자가 아버지고, 그다음에 다른 분들도 좋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미술인들이 모여 담론을 나눌 장소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마침 김 화가의 작업실이 비교적 규모도 있고, 성품도 좋아 작품이나 짐을 갖다 놓거나 자고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공공의 장소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6·25 직후 모든 것이 어려울 때라 여러 화가들이 아버지의 아틀리에에 와서 같이 생활하다시피 했다. 그게 자랑스러워 보여 자긍심도 많이 가졌다”라고 말했다.
토벽회는 1953년 김경, 임호, 서성찬, 김영교, 김종식, 김윤민이 참여해 6명의 동인으로 결성됐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토벽회는 일제 강점기 감상적 인상주의 양식에서 탈피해 민족적 양식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향후 부산 지역의 양식적 특성의 창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토벽회의 토벽은 ‘토박이’라는 의성어에서 유래했다. 부산 지역 거주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자, 흙담의 한자어이기도 하다. 토벽 동인들은 추상화를 주로 그렸던 중앙화단 중심의 화가들과 달리 사실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김종식 화가의 집이 중구 대청동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바다 때문이었다. 1947년 자리를 잡을 당시에는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다와 항구가 시원하게 내다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1953년 부산 역전 대화재로 김 화가의 집과 대부분 작품은 불에 타고 만다. 화마에 모든 것을 잃은 괴로움은 그의 작품 ‘인간가족’에 투영됐다. 김 이사장은 “그 뒤 어머니가 화가에게는 아틀리에가 있어야 한다”며 “친척 집에 가서 돈을 빌려서 화재 이후 우리 집을 제일 먼저 새로 지었다”라고 말했다.
김 화가의 작업실은 이처럼 부산 미술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1988년 이후 잠깐 기념관으로 운영되다 30년 넘게 지금까지 폐가로 방치되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부산일보 2023년 9월 1일 자 11면 보도). 중구청은 2016년 매입을 검토했지만,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백지화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지역의 근대 화가 작업실 중에서 온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장소로 문화재와 같다고 생각한다. 김종식 화가의 작품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접촉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건물을 소유한 김 화가의 둘째 아들을 비롯한 유가족 측은 부산시나 중구청에서 매입 의사를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응할 생각이라고 밝힌 상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