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해외 직구 대응책 ‘오락가락’, 국민 혼란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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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개 품목 금지 밝힌 지 사흘 만에 철회
여론 수렴도 없이 발표, 신뢰성만 까먹어

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이 없는 해외 제품의 직구를 금지하는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에 이를 철회해 국민들에게 또 혼선만 키웠다. 미국의 한 해외 직구 배송대행업체의 물류센터 모습. 부산일보DB 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이 없는 해외 제품의 직구를 금지하는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에 이를 철회해 국민들에게 또 혼선만 키웠다. 미국의 한 해외 직구 배송대행업체의 물류센터 모습. 부산일보DB

정부가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이 없는 해외 제품의 직구를 금지하는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에 이를 철회해 국민들에게 또 혼선만 키웠다. 정부는 19일 “안전성 조사 결과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해 나갈 계획”이라고 수정했다. 앞서 사흘 전인 16일 장난감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안전 인증이 없으면 해당 제품의 해외 직구를 원천 금지한다는 발표 내용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다. 이미 해외 직구가 생활화된 국민의 반발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못한 정부의 어설픈 방침이 문제를 일으켰다. 안 그래도 현 정부의 정책 신뢰성이 그렇게 높지 않는 판에 자꾸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부가 애초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기로 한 것은 안전 관리 강화와 소비자 보호가 목적이었다. 13세 이하의 어린이가 사용하는 유모차나 장난감 등의 화재·감전 예방을 비롯해 생활용품에 포함된 유해 성분의 반입을 막아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취지다. 정책 취지로만 본다면 반발이 일어날 구석이 없다. 오히려 국민들의 환영을 받을 만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로 흘렀다. 이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탓이 크다. 안전한 상품의 확보와 피해 구제책 등 대안 없이 무턱대고 직구부터 금지하니 특히 젊은 층의 반발이 거셌다. 다양한 문화·상품을 즐기는 일은 벌써 국민의 일상이 됐는데 정부만 이에 어두웠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설익은 정책’은 이처럼 국민의 반발뿐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도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이다. 안타깝지만 현 정부 들어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2022년 7월 교육부는 초등생의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하는 정책을 불쑥 내놨다가 국민의 극심한 반대로 사실상 2주 만에 폐기 수순을 밟았다. 지난해 8월엔 정부가 흉악범죄 대책을 세운다며 단계적으로 폐지했던 의경 제도의 재도입을 밝혔다가 하루 만에 ‘필요시 검토’로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모두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었음에도 면밀한 여론 수렴이나 검토 없이 발표했다가 국민에게 호된 질책만 받았다.

이번 혼란만 해도 작년 우리 국민의 해외 직구 금액이 무려 7조 원에 육박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별도의 안전 확인 절차 없이 국내로 반입되는 제품의 유해성과 안전을 살피는 일은 마땅히 정부의 책무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국민의 일상생활 영위라는 최우선의 고려 사항이 있다. 모호한 적용 범위와 방식으로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지 않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앞으로 국회 논의 등 공론화를 통한 법률 개정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국민과의 소통이 기본임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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