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4·10 총선’의 숨은 패자, 지방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인구 과반 수도권 중심 첫 총선
선거 의제에서 균형발전은 제외
지역 대변할 정치인 대거 낙마
갑툭튀 ‘부산 정치인’으로 대체
중앙정치 하수인 자처 모습도
소멸 위기 지방 미래도 불투명

정부를 견제하면서 입법을 맡을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지방민과 큰 상관이 없는 선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 지역의 미래와 살림살이를 좌우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부산의 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20년 넘게 지역민들이 간절히 바라마지 않던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국회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허락’한 덕분에 첫 삽을 떴다.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지역 역량과 처지는 아랑곳없이 330만 시민을 대표하는 부산시장이 국회에 올라가 불과 십수만 표를 얻은 더불어민주당 실력자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려야 풀릴까 말까 한 문제다. 그럼에도 산은 이전의 핵심 키인 ‘산업은행법’ 개정 여부는 안갯속이다. 정치에서 중앙과 지방은 별개 영역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4·10 총선’에서 드러나지 않은 패자 중 한 영역은 지방이다. 중앙에 예속돼 있는 지방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정치 이벤트였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는 2020년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처음 치러진 총선이다. 1인 1표제 하에 선거는 인구가 더 많은 쪽 이해관계를 좇는다. 향후 선거에서도 지방분권·균형발전은 수도권 이해가 걸린 문제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의제다.

야야 중앙당 모두 이번 총선에서 지방분권·균형발전 공약을 외면했다. 거대 양당은 선언적인 슬로건만 내세웠을 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등 현재진행형 공약만 보여주기 식으로 내세웠다. 지방이 기대를 걸던 메가시티론은 ‘메가 서울’로 변질돼 수도권 위성도시 표심을 유혹하는 소재로 다뤄지는 촌극도 벌어졌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필요한 권한과 재정 이양·분산 문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목소리를 냈지만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묻혔다.

오히려 총선 기간엔 ‘지방의 굴욕’이 이어졌다. 여야 할 것 없이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지방 대변자 역할을 할 여러 정치인이 총선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부산에서도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시작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6선 고지를 노리던 서병수 의원이 정치 뒤안길로 물러날 처지다. 부산시의원 이력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던 이주환·전봉민 의원도 다시 무관으로 돌아간다.

최인호·박재호 의원의 3선 실패는 두고 두고 아쉬울 일이다. 두 사람은 때론 중앙당 방침을 벗어나면서까지 고비마다 부산 현안 해결에 앞장섰다. 최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무리 짓는 와중에 가덕신공항 조기개항 필요성을 논하는 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지방의회나 지자체에서 활약하다 국회 입성으로 체급을 올리려던 여러 인물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형욱 서은숙 이현 정명희 홍순헌 박인영 변성완 노정현 등이다. 본선 진출에 실패한 부산 정치인도 적지 않다. 중앙 정치가 모든 권한을 움켜쥔 상황에서 다른 지방이라고 다를까.

여야 중앙당은 그 자리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치인을 내려꽂았다. 이번 총선 당선인 가운데 20년 넘게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일한 기자에게도 생소한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 조승환 정성국 서지영 주진우 정연욱 당선인은 ‘부산 정치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총선 전까지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적 있을까 의문이 드는 인물도 있다.

국민의힘이 부산진을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정연욱 당선인을 부산 수영에 다시 꽂은 일은 지방의 무력함을 느끼게 한 드라마틱한 사례다. 정 당선인 당선 과정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 예로 들었을 뿐, 지역에서 봉사 한 번 한 적 없고 지역민이 원하는 정책을 제대로 모르는 인물이 희미한 지역 연고를 고리로 출마해 당선되는 일이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지방 스스로 중앙 하수인을 자처한 일도 있었다. 선거 직전 만난 A 단체장은 “B 단체장보다 먼저 치고 나갔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 단체장은 몇몇 행사에서 총선에 나선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돌발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A 구청장은 내심 B 구청장이 제대로 ‘한 건’ 하면서 다음 지방선거 공천 때 유리해졌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여 17 대 야 1’. 수도권 122석 중 103석을 야당이 차지한 이번 선거에서 부산 시민은 정반대 답을 내놨다. 전국 다른 어떤 곳보다 지방분권·균형발전 의지가 강하게 표출돼 온 도시가 부산이다. 부산은 소멸로 내몰리는 지방의 위기감을 반영한 선택을 한 것 아닐까. 지방의 영향력이 유례없이 감소된 가운데 치러진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22대 국회가 곧 출범한다. 어쩌면 단순히 총선 결과만이 아닐지 모른다. 지방의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이 앞선다.

김영한 사회부장 kim01@busan.com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