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조선의 범죄 수사를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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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1790년(정조 14)에 전남 강진에서 김은애라는 여인이 안조이라는 여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은애를 사모하는 최정련이라는 사내가 그녀와 혼인하고자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비롯되었다. 이 사내는 안조이를 매파로 넣어 혼인하고자 하였으나 김은애는 이 또한 거부하고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혼인을 했다. 그러자 이에 앙심을 품은 안조이는 김은애에 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김은애는 자신을 비방하는 소문을 퍼뜨린 안조이를 살해하게 된다.

김은애의 자백 내용은 이렇다. “제가 시집오기 전 이웃에 사는 최정련이란 자가 몰래 나와 간통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고 안조이를 중간에 내세워 청혼해 왔습니다. 이를 허락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자 최정련은 안조이와 함께 추잡한 말로 더욱 심하게 무고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고 밤중에 칼을 들고 안조이의 집에 들어가 먼저 그 목을 찌르고 다시 난자하였으며, 이어 최정련의 집으로 가려 하였으나 저의 어미가 말려 그만두었습니다. 관청에서 최정련을 때려죽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진술했다.

정조 때 발생한 참혹한 살인 사건

외견상 중범죄로 범인 처벌 불가피

하지만 끝까지 사건 실체 접근 노력

지금의 검사 수사, 권위주의 만연

전문 지식 만으로 세상 대처 안 돼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감 중요

전형적인 일급 살인이다. 우발적으로 죽인 것도 아니고 밤에 남몰래 칼을 들고 들어가 피해자의 목을 찌르고 다시 난자한 뒤 최정련도 죽이려고 했다. 단계마다 계획 살인의 의도가 분명하다. 심지어 최정련을 때려죽이라고까지 요구했다. 이건 매우 악질적이다. 미국 배심원들에게 맡기면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도 백발백중 유죄 평결이 나올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두고 정조는 오랜 논의 끝에 살인을 범한 김은애를 석방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결백과 지조를 지키려고 한 점을 참작했다. 그리곤 그녀가 최정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살인은 심각한 범죄지만 조선 시대 여인에게 지조는 생명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자신도 죽기를 각오하고 한 일이다. 즉 자신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것이다. 정조는 이를 감안해 김은애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한편 안조이는 어떨까. 생명 못지않게 중요한 한 여성의 지조를 더럽히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죽어 마땅한 범죄로 판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런 판단을 법조문만 아는 율사(律士)들이 내릴 수 있을까.

2년 후인 1792년, 동래장에서 엿을 팔던 박조이라는 30대 후반의 여인이 덕천동에서 화명동으로 가는 탄현이라는 고갯마루에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손정일을 둘러싸고 무려 8년간 송사가 진행됐다. 여러 증거가 제시되었지만 모호한 내용도 있고 증언이 번복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손정일의 자백이 없었다. 정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하교하였다.

“여러 차례 조사했으나 의문은 더하고, 자세히 조사하라고 했으나 도리어 모호해져 앞뒤로 사건을 논의하고 심의한 말들이 모두 ‘의심스럽다’는 한마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숙한 여자의 죽음은 원통한 가운데 원통하고 참혹하고 또 참혹하니 이를 풀어주려면 진짜 범인을 잡아내 즉시 법에 따라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말로 하교하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진범이라고 하는 손정일이 진짜 범인이 아닌데 7년 동안 갇혀서 고문을 당하다가 만에 하나 옥중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정숙한 여자를 죽인 죗값을 치르게 하려다가 손정일의 원통한 죽음을 더하게 될 것이니, 어찌 재판의 이치가 이럴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정조는 거듭거듭 조사를 명했고, 결국 1800년에 이르러 손정일의 자백서가 올라오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물론 8년에 이르는 고문 끝에 결백함을 더 이상 주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항간에 검사들이 재판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고 피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런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데는 검사 조직의 특수성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이면서 아직 검사동일체 원칙이 유지되고 있고, 검사 개인이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구속돼 독립성을 상실하는 폐단도 없지 않다. 22시간에 이르는 밤샘 조사는 권위주의적으로 보이고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공정한 수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결국 모든 일은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정의를 구현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 전문 지식만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없으며 전문 지식은 상식의 보조자이어야 한다. 검사를 ‘프로’라고 부르는 일부터 그만두고 ‘specialist’가 아니라 ‘generalist’로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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