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탱크'의 뒷심
프로 골퍼 최경주 선수의 별명은 ‘탱크’다. 역도 선수 출신으로 허벅지가 유난히 튼실해 지어진 별명이라고 한다. 탱크라는 별명처럼 최경주는 최고의 무대인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거침없이 돌진하며 여러 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로서 이룬 족적만으로도 이미 ‘전설’로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 골프계의 큰 기둥이다.
그런 최경주의 골프 여정은 아직도 거침이 없다. 50대 중반에 이른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선수들과 겨뤄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달려 비거리가 줄어드는 신체의 역량 저하를 노련하고 무르익은 원숙함과 침착함으로 보완하면서 스스로 우리나라 골프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지난 19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이룩한 한국 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 우승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한국 프로골프 투어 사상 최고령 우승이라는 기록도 그렇지만 침착함, 용기와 함께 보여준 지혜로움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연장전 첫 홀에서 두 번째 빗맞은 샷이 개울 옆의 작은 섬에 온전히 멈춰 선 것은 기적 같은 행운이라고 갤러리들은 감탄했다. 최경주는 이곳에서 공을 핀 1m 옆에 붙여 파 세이브를 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경기가 끝난 뒤 최경주는 이 장면에 대해 “주님, 우승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기도했다. 컨트롤이고 뭐고 필요 없다고 생각해 온몸을 돌려 스윙했다”고 말했다. 기교나 기술을 걸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대로 채를 휘두르기만 했다는 말로 들린다. 평소의 꾸준한 자기 관리와 훈련에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된 자기만의 스윙 패턴을 믿고 의지한 결과로 보인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뚜벅뚜벅 나아갔다는 점에서 최경주의 이번 우승은 많은 중장년층에게도 큰 힘과 격려가 됐다. 최경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던 날은 그의 54세 생일날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54세가 아니라 56세 생일이라고 한다. 호적 신고를 늦게 하는 바람에 공식 출생 연도는 1970년이지만 사실은 1968년생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체력적으로 왕성한 젊은 선수들 틈에서 이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것은 골프를 떠나 다른 많은 분야에도 영감을 주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다소 무기력하고 무슨 일에도 심드렁해지는 또래의 입장에선 최경주의 이번 쾌거가 죽비 소리처럼 들린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