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법에 매몰된 여야, 민생 법안은 '줄폐기' 수순
민생법안 줄줄이 폐기 위기
윤 정부 정책 뒷받침 법안 제동
여야 특검법 맞받으며 민생법안은 외면
법안 '원점 재검토' 수순…"결국 국민만 피해"
‘채 상병 특검법’을 구실로 한 야권 압박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뽑아들면서 여야 협치가 ‘올스톱’됐다. 정쟁에 매몰된 여야 극한 대치 속에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 대부분은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윤 정부 핵심 법안 대부분이 ‘원점 재검토’ 수순을 밟아 무기한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2일 국회와 정치권에 따르면, 에너지 정책 백년대계를 목표로 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이하 고준위 특별법)은 28일 본회의를 앞두고 관련 논의가 중단됐다. 고준위 특별법은 여야 대치 상황 속에서도 막판 협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법안으로 꼽혀왔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자력발전의 연료로 사용된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은 2030년 한빛(전남)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경북·2031년), 고리(부산·2032년) 원전 등이 차례로 가득 찬다. 저장시설 건설이 미뤄지면 사용후 핵연료를 둘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할 수 있다. 더욱이 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포화는 인근 지역에도 위협으로 다가온다. 탈원전과 친원전 등 원전 방향성을 차치하고 당장 안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여야 모두 10차례 이상의 논의를 거쳐 특별법 필요성에 공감대를 쌓아왔다.
관련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여야 위원들은 지난 20일 법안소위와 21일 전체회의 등을 거쳐 특별법 본회의 회부를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계획은 모두 엎어졌다.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단독 처리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가시화하면서 여야 대치 형국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오는 28일 열리는 본회의에 고준위 특별법을 상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 바 있다. 이번에 폐기되면 22대 국회에서 새로운 산자위 여야 의원들이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사이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내 부지에 계속해서 쌓이게 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열두 차례가량의 논의를 거치면서 특별법 통과 9부능선을 넘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논의가 중단됐다”며 “법안 폐기 후 22대에서 논의를 시작하면 또다시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각종 민생법안도 줄줄이 폐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당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과 금투세를 폐지하는 소득세법도 표류 중이다. 이달 말 본회의 전 조세소위 일정이 잡히지 않으면서 국회에서는 개정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는 윤 대통령이 강조한 민생 법안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개정은 국민께서 간절히 바라셨던 법안”이라며 추진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윤 정부발 민생 법안이 줄줄이 여야 냉전에 발목 잡히는 모양새다. 이외에 △노후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감면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비수도권 미분양주택 과세 특례 법안도 사실상 폐기가 확정적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 이들 법안 모두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민생법안이지만, 야당 반대로 모두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특검법 강행 등 정쟁에만 골몰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정책 추진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야당과 정면충돌하는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도 쏟아진다. 여야 정치권 ‘수싸움’에 민생 법안들이 희생된 꼴이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 전국민 25만 원 지급을 위한 ‘민생회복지원금 특별조치법’을 1호 정책 법안으로 발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생 법안 줄폐기 위기는 고집만 부리는 민주당과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국민의힘의 합작품”이라며 “핵심 법안들이 제때 소화되지 못하면서 이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