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총선백서 논란
백서(白書). 정부가 정치, 외교, 경제 따위의 각 분야에 대해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만든 보고서를 말한다. 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다. 대표적인 백서로 국방부가 국토방위에 관련된 여러 현황과 정부 방침을 담아 2년마다 정책 보고서 형태로 발행하는 국방백서가 있다. 1962년 경제기획원이 간행한 경제백서가 국내 최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는 4~5년 정책을 평가해 각각 국정백서를 발간한 바 있다. 국민 일상에 큰 영향을 준 코로나19 사태 관련 백서도 있다.
백서는 영국에서 유래했다. 영국 정부가 의회에 공식 제출한 보고서의 표지가 흰색이어서 화이트 페이퍼(White Paper)라고 불렀던 게 시초라고 한다. 영국 국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과 영국 의회가 만든 보고서는 파란색 표지로 돼 있어 청서(靑書)로 불린다. 이 같은 문서 제작 관행이 세계로 널리 퍼진 이후 각국은 외교 문서 표지에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다. 1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에 영국과 일본은 청서, 독일은 백서, 프랑스는 황서(黃書), 이탈리아는 녹서(綠書), 옛 소련은 적서(赤書)였다. 일본은 지난달 16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며 부당한 주장을 펼친 외교청서를 발간해 논란을 빚었다.
국내에선 정부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보통 1년 주기로 발간하는 종합 보고서도 백서로 간주된다. 근년 들어 일반 기업이나 민간 기관단체에서도 추진한 사업의 전말, 프로젝트 성과, 통계자료 등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한 백서 제작이 활발하다. 현실 진단과 대책, 앞날 예측을 제시한 백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한 나침반 또는 청사진이 되기 때문이다. 백서가 기업과 단체의 홍보나 정체성 부각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도 한 이유다. 요즘은 개인이 특정 주제에 대해 연구·조사한 보고서, 온갖 내용을 망라해 넣은 문서와 책에도 백서란 제목을 붙일 정도다.
4·10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패인을 분석하는 총선백서 발간을 둘러싸고 40여 일째 논란을 벌이고 있어 볼썽사납다. 여당이 민심의 심판을 받은 만큼 앞으로 달라지려는 목적으로 총선백서를 계획한 건 고무적인 태도다. 그런데 친윤석열계와 친한동훈계가 참패의 더 큰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며 책임을 모면하려는 수싸움으로 갈등해 문제다. 이러다간 자칫 뼈저린 성찰과 진실성은 결여되고 변명과 남 탓이 넘치는 형식적인 백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교훈이 없는 백서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