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기준금리 인하 시사… 고민 깊어지는 한국은행
ECB 총재, 언론 인터뷰서 언급
미국 고금리 기조는 지속될 듯
한은 기준금리 또 동결 예상
고물가·고환율·가계부채 발목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대한 한국은행의 셈법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은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을 시사하고 나섰다. 한은 입장에서는 경기 침체 등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 시기를 정해야 하지만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변수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22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통제 단계에 이르렀다고 확신한다”며 “이 경로가 유지되면 다음 달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유로 지역의 물가 상승세가 2% 초중반으로 내린 가운데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미국보다 먼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는 날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장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올해 들어 지금까지 경제 지표는 우리에게 (인플레이션이 2%로 향하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했다”며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종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5.25∼5.50%로 동결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에 머뭇거리는 것은 물가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당초 올해 초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3월과 4월 모두 3%대로 오히려 높아진 상태다. 연준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21일(현지시간) CNBC에 “향후 3∼5개월간 물가가 계속 둔화된다면 올해 말쯤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물가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다면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올해 없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대두되며 한은은 23일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11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역시 물가가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2.9%로 석달 만에 3%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유가와 과일 농산물 가격 탓에 목표 수준(2%)을 크게 웃돌고 있다.
불안한 환율 흐름도 발목을 잡는다.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이미 높은 원·달러 환율이 금리를 인하할 경우 또 치솟을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줄곧 1300원대 중반에서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계부채도 한은 입장에서는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큰 부담이다.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3년 6개월 만에 100%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전히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신한투자증권 안재균 연구위원은 “원래 7월이었던 한은 인하 예상 시점을 10월로 옮기고, 연내 2번 정도로 봤던 인하 횟수도 1번으로 줄였다”며 “유가가 오르는데, 성장은 IT 중심으로 회복 중이니 인하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내다봤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