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씨 뿌린 ‘어메니티’, 서천군서 꽃피웠다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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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 김해창

부산어메니티플랜 최초 수립
온천천서 콘크리트도 걷어 내
서천군 ‘노인들의 천국’ 명성

부산 강서구 둔치도 내 생태연못에서 아이들이 미꾸라지 잡기를 하고 있다. 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 제공 부산 강서구 둔치도 내 생태연못에서 아이들이 미꾸라지 잡기를 하고 있다. 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 제공

“어메니티가 뭐꼬?”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는 어메니티에 대한 부산사람들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어메니티? 호텔 내 편의시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맞다. 어메니티는 매우 폭넓고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메니티의 정신적 아버지는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 땅에 어메니티라는 말이 들어온 게 1980년대 후반이다.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막상 어메니티를 설명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아무튼 어메니티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종합적인 쾌적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살맛나는 세상의 기반이 되는 정신적·물질적 환경이다. 섣불리 정의하기보다, 이런 것까지 다 포함된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어메니티는 1980년대 후반 한국에 상륙해 부산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어메니티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가 당시 동아대 조경학부 김승환 교수였다. 김 교수는 논문 심사 때 어메니티를 적당한 한국어로 번역하라는 지적에 반론을 제기해 논문 게재가 미뤄지는 고초(?)까지 겪는다. 김 교수는 1995년 해운대 센텀시티 인근의 강변고속도로를 지하화하는 계획이 포함된 수영강어메니티플랜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영화의전당 지하차도 건립이 올 상반기에야 비로소 본격화된다. 어메니티 선구자의 혜안을 부산이 좀 더 일찍 따라가지 못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부산시는 1994년 국내 최초로 부산어메니티플랜을 수립했다. 1998년에는 온천천어메니티로 한수 이남 최초의 자연형 하천 만들기가 추진돼 콘크리트를 걷어 냈다. 1999년부터 부산에서는 ‘어메니티 100만평공원조성’이 범시민운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같은 해에 부산시는 부산어메니티100경을 선정해 어메니티를 시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2000년을 전후해 어메니티플랜이 전국으로 확산된 데는 이처럼 부산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저자는 오랜 환경전문기자 생활을 거친 뒤 2011년부터 경성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7~1998년 일본의 시민단체인 AMR에서 연수를 하며 ‘어메니티 기자’로 변신했다고 술회한다. AMR은 한·일하천환경 어메니티 워크숍을 부산과 서울에서 열기도 했다. AMR에는 육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아기 어메니티’, 구강의 쾌적함을 중시하는 ‘입의 어메니티’ 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이 부럽게 느껴진다.

이 책에는 구미의 어메니티 운동부터 시작해 일본의 어메니티 운동까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례가 잘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가까운 우리 지자체의 성공 사례에 더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다. 특히 충남 서천군은 2000년대 초부터 추진해 온 ‘어메니티 서천’이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됐다. 궁금해서 ‘서천군 복지마을’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2017년부터 마을 방문 비용을 1인당 3000원 씩 받는다는 안내문이 뜬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주택, 병원, 휴양시설, 일자리가 모두 있는 공공영역의 복지마을은 여기가 국내에서 유일했다. 서천군은 ‘노인들의 천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입주자의 40%가 외지에서 왔고, 모두 서천으로 주소를 옮겼다니 솔직히 시골 마을 서천이 부럽다. 어메니티의 어메이징한 힘이다.

고무적인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어메니티 운동은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자체 단체장이 바뀌면 전임자의 업적 지우기로 어메니티 운동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결론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부산이 언제까지 하드웨어 중심의 도시계획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냐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총체적인 반성과 성찰 없이 2035세계박람회 도전 운운하는 것은 희망 고문과 다름 없다는 이야기다. 이 환경경제학자이자 소셜디자이너는 부산시는 이제 축소지향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어메니티야말로 기후위기시대 개인적 삶의 대안이자 도시정책의 소프트전략이라는 것이다. 막히면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김해창 지음/미세움/296쪽/1만 9800원.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표지. <살맛나는 세상, 어메니티 도시 만들기>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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