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수류탄과 안전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클레오파트라도 양귀비도 즐겨 먹었다는 열매가 석류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많이 함유돼 피부에도 좋고 혈관에도 좋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옛 그림이나 혼례복 같은 문양에서 자주 보이는 흐드러진 석류알이 그걸 뜻한다. 우리나라 석류는 떫고 시큼한 맛이 나지만 원산지인 이란 등지에선 강한 단맛이 나는 종자들이 대부분이다.

웬 석류 타령인가 싶겠는데, 사실은 수류탄 때문이다. 얼마 전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투척 훈련 중 사고가 나서 신병이 목숨을 잃었다. 수류탄(手榴彈) 한자어에는 석류 류(榴) 자가 들어 있다. ‘손으로 던지는 석류 폭탄’이 바로 수류탄이다. 수류탄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grenade’도 마찬가지다. 석류를 의미하는 ‘pomegranate’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둥근 열매의 겉모습이나 붉은 껍질 안에 가득찬 알갱이가 수류탄과 그 속의 쇠구슬·파편 등을 연상시킨다. 그래도 그렇지, 건강에 좋고 꽃도 어여쁜데 살상용 무기에 비교하다니. 석류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수류탄은 태생부터 안전에 문제가 많은 무기였다. 항아리나 통 안에 화약을 넣고 불을 붙여 투척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류탄의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진 17~18세기 근대 유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위력이 확실한 만큼 위험도 컸다는 얘기. 근접용이라 잘못 다루면 아군까지 큰 피해를 보았다. 수류탄 임무만 맡은 ‘척탄병’이 새로 생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수류탄의 안전은 현대 들어서도 속 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하는 고질적 숙제다. 대한민국 남성은 군 복무 중 훈련병 때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는다. 당시 현장에서 겪은 극도의 긴장과 공포감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일까,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꾸준히 제기되는 위험성 중 하나를 꼽자면 속칭 ‘더블 클릭’이다. 수류탄 안전핀을 뽑은 뒤 무심코 손을 폈다가 다시 쥐는 걸 말한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고쳐 잡는 경우도 있다. 이때 이미 수류탄 도화선은 타들어 가기 시작한 상황. 본인도 주변 사람도 모를 수 있으니 대단히 위험하다.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수류탄 자체의 하자일 수도 있고, 실전 교육의 허점이 원인일 수도 있다. 관련된 모든 문제를 낱낱이 살피고 안전 대책들을 철저히 재점검해야 한다. 꽃 같은 청춘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군대에 갔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겠나.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