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 문화 콘퍼런스Ⅲ] “우리는 하나? 문화다양성 저해하는 표현”
한경구 “우리 안 다양성 주목”
앤더슨 “펀딩은 ’불도그’처럼”
쉐리던 “권력 차등 재분배 중요”
“한국도 영국처럼 다양성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이해가 필요한 과정에 있습니다. 포용만 하더라도 주류의 인정을 받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평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데, ‘포용의 문화예술(inclusive culture)’을 의미하는 ‘인클루시브’ 해석도 ‘포용’ 대신 ‘포함’이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으니까요. 포용이라고 하면 수용되는 느낌이 들어서요.”
2024 문화다양성 주간을 맞아 지난 23일 오후 라발스호텔에서 부산문화재단이 개최한 ‘2024 부산 문화 콘퍼런스Ⅲ’ 포럼 종합토론 좌장을 맡은 이상헌 춤 비평가의 모두 발언이다. 이날 콘퍼런스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포용 예술 주요 사례를 공유한 자리이기도 했지만, 우리 안의 문화다양성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인류는 왜 문화다양성에 기반하여 다름을 포용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한 문화인류학자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성에 대해 더 돌아보기를 권했다. 한 사무총장은 먼저 ‘왜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하는가’에 대해 화두를 던지면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정책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를 위한 거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자신,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꼬집었다.
그는 또 “문화다양성을 보존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들이 사라지지 않게 그대로 보존하자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문화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이라면서 “문화는 계속 바뀌고 변화하면서 어떤 건 사라지고, 어떤 건 새롭게 생겨날 텐데 다양성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문화 상대주의’만 하더라도 ‘윤리적 상대주의’가 아니라 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이해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다양성 개념이 생물다양성 개념에 비해 한참 늦게 등장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 시대 등장과 함께 강조된 통합과 단결, 조화가 내부의 다양성을 불편하게 만든 경향도 없지 않았다”며 “그렇게 수많은 문화와 민족이 사라지거나 생존을 위협받게 된 다음에 비로소 문화다양성 개념을 주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특히 “다양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최소한 세 가지, 즉 △세상의 다양성 △우리(한국 등) 내부의 다양성 △내 안의 다양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내부의 다양성에 대해 좀 더 주목하는 게 이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유교문화 등 한국의 허약한 문화다양성 기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특히 식민 통치와 분단 같은 독특한 역사적 경험으로 자민족중심주의와 통합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듣기엔 아름다운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도 어떤 이들에겐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음을 경계했다. 단체 사진 등을 찍을 때 아무렇지 않게 하는 ‘파이팅’이란 말도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선 ‘피스’로 바꿔 부르기도 한단다.
마지막으로 한 총장은 “문화정책 역시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해서 수립해야 할 것”이라면서 “문화다양성이 왜 필요한가, 결국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소수자인 그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포용적 무용 단체인 ‘인디펜-댄스(Indepen-Dance)’의 창립자인 캐런 앤더슨은 “싸우다 보니 길을 열게 됐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불도그’처럼 불굴의 의지로 버텨 온 그의 스토리를 통해 많은 이가 감동했다. 앤더슨은 18세 이후 학습 및 신체장애가 있는 성인을 위한 돌봄 시설인 사회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면서 저녁엔 춤을 췄는데 어느 순간 두 지점이 합쳐지는 순간을 맞게 됐다고 한다. 즉, 센터의 성인을 위한 댄스 수업 제안을 받은 것이다. 스트라스클라이드 지방 의회의 레지던스 댄서 자리였다.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한 지 13년 만이었다. 춤추는 건 좋아했으니 도전 정신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첫 수업은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96년 4월 독립성과 춤을 결합하는 ‘인디펜-댄스’를 설립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춤을 추는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선 이런 움직임이 태동했다. 2002년엔 자선단체 법적 지위를 얻어서 스코틀랜드 문화위원회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명의 직원으로 시작해 28년 만에 3분의 1인 15명의 직원이 장애를 갖고 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처음엔 주 1회 수업에서 지금은 매주 28개의 온오프라인 수업을 열고 있으며, 1년 42주 커리큘럼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포용 댄스 컴퍼니’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춤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7개의 기둥과 가치를 중심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위한 수업을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그들이 춤을 통해 자기의 잠재력을 즐기고 표현하며 충족할 기회를 만드는 중이다. 2022년 새롭게 옮긴 스튜디오엔 현금 흐름을 가능케 하는 커피숍도 열었으며, 다운증후군의 한 가족이 공급하는 ‘열 마리의 당나귀’로 브랜딩 된 특별한 커피를 판매해 얻은 익은 인디팬-댄스에 재투자했다.
앤더슨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현실적으로 후원금을 찾아다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말했다. “이 일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후원금을 찾아다니는 게 숙명이긴 하지만 단순히 후원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펀딩은 늘 힘들고, 펀딩이 확정되더라도 숙제가 끝없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도그처럼 한번 물면 놓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포기는 사전에서 지우시기 바랍니다. 싸우다 보니 새로운 길을 열게 되더라고요.”
어쨌든 이 과정은 수십 년이 필요했고,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춤을 춰 보고 싶다고 하면 누구라도 댄스 수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강사 중에는 장애인도 있다. 앤더슨은 마지막으로 “인디팬-댄스는 장애인 무용단이 아니라 무용이라는 본질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편 장애인 예술가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계적인 단체인 영국의 언리미티드(UNLIMITED) 캣 쉐리던(33) 수석 프로듀서는 “영국이 유일한 모델이거나 옳다는 게 아니라 영국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전제한 뒤 자신도 성인 ADHD를 앓고 있는 인지 장애인이며, 퀴어 여성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다양성 관점의 중요성을 굳게 믿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특히 “어떤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권력의 차등을 인지해 권력을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며 “공평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포용성”이라고 강조했다. 언리미티드를 운영하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도 “예술가를 소중히 여기고, 급진적이며, 형평성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형평성을 위해서는 장애인에게 다양한 예술 편의를 제공하는데, 장애인올림픽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지난 10년간 521명의 장애인 예술가에게 650만 파운드(한화 약 113억 원)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쉐리던은 특히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신뢰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며 신뢰가 핵심임을 거듭 강조했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