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에 중산층도 휘청…5집중 1집은 '적자 살림'
4분위 적자가구 비율 2.2%P 늘어 18.2%…3분위도 17.1%
고소득층인 5분위도 적자가구 비율 증가…근로소득 감소 영향
'역대 최대' 재정 투입에도 가구 실질소득 7년 만에 최대 감소
고물가·고금리에 근로소득 감소까지 겹치면서 올해 1분기(1~3월) 중산층 가구 5집 중 1집가량은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은 '적자 살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 가구의 적자 가구 비율도 증가했다.
올해 초 민생 회복을 위해 역대급 규모의 재정이 투입됐지만 가구 소득이 줄고 소비도 정체하는 등 여전히 민생 회복은 더딘 모양새로, 재정수지 악화와 맞물려 정부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26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가구 중 적자 가구의 비율은 26.8%로 1년 전(26.7%)보다 소폭 증가했다. 적자 가구 비율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을 뺀 값) 보다 소비지출이 많은 가구의 비중이다.
소득 분위별로 보면 상위 20∼40%인 4분위 가구의 적자 가구 비율은 1년 전보다 2.2%P 증가해 18.2%가 됐다. 이는 직전 분기인 작년 4분기(14.8%)와 비교해 3.4%P 증가한 것이다. 소득 상위 40∼60%인 3분위 가구의 적자 가구 비율도 17.1%로 나타났다. 중산층 가구 5집 중 1집 가까이가 소비 여력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적자 살림'을 했다는 의미다.
소득 상위 20% 이상인 5분위 가구 역시 적자 가구 비율이 1년 전보다 0.5%P 증가한 9.4%를 기록했다. 2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도 1년 전보다 0.9%P 증가한 28.9%였다.
반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적자 가구 비율은 2.0%P 감소해 60.3%로 개선됐다.
중산층·고소득층 가구 '적자 살림 증가'의 배경에는 고금리·고물가의 장기화와 부진한 소득 증가가 있다. 높은 물가와 금리가 계속되면서 가계의 소비와 이자 비용 등 지출은 증가했지만, 소득이 이를 상쇄할 만큼 늘지 못하면서 적자가 확대된 것이다.
올해 1분기 월평균 가계 소득은 1년 전보다 6만 8000원(1.4%) 늘었지만, 가계지출은 9만 9000원(2.5%) 증가했다. 이자 비용도 1만 4000원(11.2%) 늘었다. 특히 근로소득은 1년 전보다 3만 5000원(1.1%) 줄며 '역성장'했다. 이에 따라 근로자 가구 비중이 높은 중산층·고소득층 가구의 살림살이가 더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게 통계청의 분석이다.
1분기 3분위·4분위 가구의 지출은 각각 5.9%, 4.5% 늘었지만, 소득은 각각 5.4%, 2.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근로소득의 증가율은 3분위가 3.8%, 4분위가 0.7%로 부진했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의 상여금이 감소하면서 고소득 가구인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4.0% 감소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초 체감경기 개선을 위해 재정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지만 올해 1분기 가계 살림살이는 오히려 더 악화했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깜짝 성장'과 온도 차가 크다.
물가 상승분만큼 소득이 늘지 못하면서 1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7년 만에 가장 큰 폭(-1.6%)으로 줄었다.
실질 소비지출은 제자리걸음 했다. 지출액 자체는 3.0% 늘었지만 결국 모두 물가 상승분이었던 셈이다.
지출을 꽁꽁 묶었음에도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적자가구 비율(26.8%)은 2019년 1분기(31.5%) 이후 5년 만에 최대치로 올라섰다.
1분기 악화한 가계 살림살이는 연초부터 '민생 회복'을 목표로 역대급 재정을 쏟아부은 정부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올해 3월 정부 총지출은 85조 1000억 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였다. 올해 1~3월 누적 기준(212조 2000억 원)으로도 가장 많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