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맛이 물씬 나는 ‘시 읽는 골목’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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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영도일보서 ‘문학 치유’
시 낭독 내면 드러내는 체험
“아프고 힘든 이 위로받기를”

25일 카페 영도일보에서 문학 치유 프로그램 ‘시 읽는 골목’이 열리고 있다. 25일 카페 영도일보에서 문학 치유 프로그램 ‘시 읽는 골목’이 열리고 있다.

이달 초 SNS에 영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 읽는 골목’이라는 문학 치유 프로그램이 무료로 열린다는 공지가 떴다. 장소는 부산 영도구 청학동 ‘카페 영도일보’, 행사를 주관하는 이는 카페 주인인 손음 시인이었다. 손 시인은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월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고 한다. 그제서야 카페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문학 치유’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은 더 궁금해졌다. 첫날 행사가 열리는 25일 저녁 카페 영도일보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날 참가자는 모두 9명. 각자의 자리에는 성윤석의 시집 <사랑의 다른 말>과 손음의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에서 발췌한 9편의 시가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시 한 편 씩을 낭독했다. 기자 역시 마지막 순서로 읽었는데 “시는 기사가 아니니 천천히 읽어라”는 지적을 들었다. 손 시인은 낭독이 끝나자 “내 감정하고 마주하는 게 중요하지, 시인이 왜 이렇게 썼을까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섯 사람이 읽으면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다 달라야 좋은 시다”라고 말했다.

손 시인은 잠깐의 시간을 준 뒤 첫 순서로 기자를 지목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순간 얼음이 된 기자는 손 시인에게 질문을 던져 위기를 모면했지만(?), 질문을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다들 처음인데도 사무쳤던 시의 문장을 말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고해성사하듯이 꺼냈다. 손 시인은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자기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음 시인이 시를 통한 문학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손음 시인이 시를 통한 문학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 씨는 성윤석 시인의 ‘풀밭’ 중에서 ‘저 잡스러움. 저 하염없음. 저 삼류… 개미떼가 아직 껍질채인 낱말들을 이고 가고 있다’라는 대목이 “폐부를 찌른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삶이 자기 몸보다 넘는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고 사는 면이 있지 않은가. 퇴직을 앞두고 내가 이 개미처럼 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 구절을 건진 거만 해도 이 자리에 온 보람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B 씨는 손 시인의 시 ‘감자’ 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젓가락으로 포크로 감자의 심장을 푹푹 찌르는 저녁이다’라는 대목을 언급했다. 그는 “스스로를 포크로 찍어 가면서 비하하고 또 채찍질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시를 보면서, 이 말을 하면서, 나를 조금 보듬어 주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예술은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시 읽는 골목’은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문학 치유 방식을 취했다. 시 낭독을 하다 보면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내면의 어떤 감정이 나온다는 게 신기한 체험이었다. 시를 읽고, 낭독하고, 쓰는 방식으로 한 달에 두 번씩 10월까지 6개월간 무료로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영도문화도시 이웃과 함께하는 공간 커뮤니티 ‘연결공간’ 지원을 받았다.

손 시인은 “우리는 모두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갖고 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을 이야기로 위로하는 게 문학의 힘이다. 그런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카페 영도일보는 그동안 시 쓰기 수업, 자유로운 형식의 시 낭송회인 ‘의문의 낭독회’, 밥을 먹으며 문학 정담을 나누는 ‘밥 콘서트’ 등 다양한 예술 문화 행사를 열었다. 시 읽는 골목에서 사람 사는 맛이 났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시 읽는 골목’ 포스터. 카페 영도일보 제공 ‘시 읽는 골목’ 포스터. 카페 영도일보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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