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슬기로운 산후조리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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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전에 딸이 엄마가 됐다. 출산과 함께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딸은 간호사로부터 새벽 3시 수유콜이 오면, 벌떡 일어나 수유실로 갔다. 육군 논산훈련소 기상나팔보다 강력했다. 모든 일정이 아이 모유 먹이기에 맞춰졌지만, 딸은 아기를 맡기고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풍성한 식사와 회복 프로그램, 육아 교육 등 다양한 도움을 줬다.

1990년대 중반에 아이를 낳고 키웠던 경상도 친정아버지로서는 “왜 산후조리원이 필요하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무식하고 용감했다. 출산 2주 뒤 친정에 온 딸과 외손자를 보면서, 출산이 웬만한 수술보다 위험할 수 있고, 육체적·심리적 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후~’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아기를 위해서도 전문 의료진의 도움이 중요했다.

한반도에서 선조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삼칠일(21일간)까지는 대문에 금줄을 쳤다. 전염병과 귀신 등 부정한 기운을 막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산모에게는 피를 맑게 하고 모유 수유에도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 미역국과 쌀밥을 먹였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진통과 출혈을 겪은 산모는 흐트러진 뼈마디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삼칠일만이라도 꼼짝하지 않고 조리하는 것이 한민족의 풍습이다. 게다가 늦은 출산이 늘어나면서 산후조리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산모의 78%가 산후조리원을 산후조리 장소로 선택했다. 과거에는 모든 산후 뒷바라지는 친정 혹은 시어머니 등 가족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화로 인해 산모와 아이를 챙길 가족조차 찾기 힘든 상황에서 산후조리원이 그 기능을 점점 대체하고 있다.

최근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국가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산후조리 비용과 부담을 국가가 덜어줘서 안정적인 출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특히 전국 20곳에 공공 산후조리원이 들어섰지만, 부산에는 한 곳도 없는 현실도 지적되고 있다. 이갑준 사하구청장은 부산 구청장·군수협의회에 ‘산후조리 비용 국비 지원 확대 안건’을 상정한다고 한다. 우리의 딸들이 큰 비용 걱정 없이 자신과 아기를 돌볼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출산과 산후조리는 산모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출산은 기쁨과 희망, 행복을 상징한다. 아이 낳기 좋은 도시를 위해서는 젖 먹던 힘도 내어야 할 판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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