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큰 그림’ 그리는 사람 없는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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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총선용 김포 서울 편입 ‘메가 서울’
균형발전 대의 외면한 얄팍한 꼼수
제대로된 어젠다 부재로 심판 직면

정치권 민생 국민 체감과 동떨어져
청년들 지원금보다 미래 비전 갈망
한국 사회 병폐 개혁할 지도자 희망

이달 초 국민의힘 총선백서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초청받았다. 당 관계자는 “30대 정치평론가로서 당 외부에서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 원인을 진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30분간 TF 위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많은 언론에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책임론이 거론됐는지가 비중 있게 다뤄졌지만, 사실 내게 주어진 30분 시간 동안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TF 위원들도 ‘한동훈 책임론’을 묻기보다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면 수도권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지, 왜 2030 세대가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지 등을 물었다. 그 문제에 관한 개인적 견해는 명확하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과 메시지를 발굴하고 제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만 보더라도 민생 분야에서 비전과 어젠다를 보여 주지 못하니 정치 이슈에 매달리게 됐고, 그 결과 높은 정권 심판 여론에 그대로 직면해야 했다. 신뢰와 기대를 안겨 주지 못했으니 패배하는 건 당연했다.

그날 회의에서 대표 사례로 꼽은 건 김포시를 비롯한 일부 경기도 도시들의 서울 편입 공약이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수도권 민심에 경고등이 켜진 걸 직감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느닷없이 경기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시키겠다는, 이른바 ‘메가 서울’ 카드를 꺼냈다. 경기 남도·북도 분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김포 시민들의 불만에 편승한 전략이었다. 마침 그날 부산 해운대에서 일하는 친구가 직장 동료들과의 단체 카톡방 대화 내용을 보여 줬다. “너무 무리수 아니냐”라는 반응이 대세였다. 실현 가능성은커녕 당위성에도 공감하기 어려운 공약에 왜 이렇게 사활을 거는지 의아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거기간 고양시에 가서도 서울 편입을 주장하며 ‘원샷법 통과’도 약속했다. 급격한 산업의 변화로 부산에선 메가마트도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메가 서울’이 웬 말인가. 장담컨대 국민의힘은 ‘메가 서울’로 얻은 수도권 민심이 이번 해외 직구 금지로 잃은 민심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구마모토에 세워진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의 공장이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렸다. 2개월 뒤인 4월엔 TSMC 2공장도 들어선다고 했다. 구마모토는 규슈 중심부에 있는 중간 규모 도시로 인구 80만 명이 안 된다. 수도 도쿄에서는 직선거리로 900㎞가량 떨어져 있다. 1960년대 미쓰비시전기, NEC 등이 공장을 세운 이후 반도체 클러스터로 명맥을 유지한 덕분도 있지만,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대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도시에 공장을 세우기 위해 정부가 10조 원 이상의 보조금을 투입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교통·인재 확보 등의 이유로 걸핏하면 수도권 남부에 공장을 짓는 우리와 대조됐다.

정치권은 평소 정쟁에 몰두하다가 선거가 닥쳐서야 민생을 찾는다. 초등학생 여름방학 숙제하듯 선거에 임박해 부랴부랴 급조한 화두를 꺼낸다. 그러니 국민에게 민생지원금으로 얼마 주자, 세금 투입해 채소 가격 내리자, 구도심 밀어내고 아파트 세우자 하는 단편적인 공약이 쏟아진다. 일자리 찾아 다들 수도권으로 몰리는 까닭에 감당해야 하는 높은 주거비·생활비라든가 복잡다단한 유통구조가 빚어내는 고물가 등에 대해선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사회 전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없이 지엽적인 문제로 말꼬리나 잡고 싸우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2030 청년들이 즐겨 보는 정보·지식 유튜브 채널들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지역 소멸, 인구 감소, 간병 부담 급증 등의 주제가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 댓글은 절망적인 미래에 대한 자조나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성토로 채워진다. 다들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리는 유튜버들이니 거기에서 표출되는 여론이 ‘일부’의 목소리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그만큼 2030 세대 유권자들은 한국 사회의 미래, 더 정확히는 자신들이 직면해야 하는 암울한 시대상을 걱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거시적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면 생활지원금으로 월 100만 원씩을 통장에 꽂아 준다고 한들 이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그 또한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생각하는 민생은 국민의 시선과 너무도 다른 것 같다. 돈 몇 푼 쥐여 주면 지지할 거라는 생각은 국민을 정말 ‘개돼지’로 보는 거다. 국민이 원하는 민생이란 결국 한국 사회의 병폐,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일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오는 30일 개원하는 제22대 국회에서는 자잘한 논란보다 거시적인 어젠다를 놓고 싸우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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