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글쓰기 수행평가, 이렇게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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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열 정관고 교사

현재 모든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직접 활동한 것만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며, 과제 형태의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가정에서 부모가 과제를 대신해서 작성하거나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교과에서는 개인별 능력을 확인할 수 있고 교실에서 실시간으로 실시할 수 있는 글쓰기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당장 글쓰기 실력을 빠르게 향상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적어도 피해야 하는 것을 숙지할 필요는 있다.

첫째, 일단 글자를 알아볼 수 없으면 상당히 곤란하다. 상당수 학생의 글을 평가하면서 겪는 상황이다. 아예 무슨 글자를 쓴 것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내용의 질을 평가하기는커녕 암호해독에 가까운 눈싸움을 하다 보면, 글에 녹아있는 최소한의 생각조차 파악하기 버거워진다. 글자가 예쁠 필요까지는 없다. 투박해도 좋으니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게 글씨를 어느 정도 교정해야 한다.

둘째, 문장이 길지 않아야 한다. 문장이 늘어지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문법 구조도 맞지 않아 산만해진다. 심한 경우 한 문장이 7~8줄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매우 좋지 않다. 이런 글은 대체로 중언부언만 하다 제대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한 문장은 가급적 한 줄을 넘기지 않도록 의식하며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고, 어떤 경우에도 두 줄은 넘지 않아야 한다.

셋째, 문학처럼 특별히 감수성을 발휘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면, 담백하고 깔끔한 글이 좋다. 알맹이 없이 미사여구로만 가득 채운 글은 사유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주관적 감상이나 근거 없는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추상적 담론보다 구체적 고민과 사색을 담아야 한다. 미사여구를 빼고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핵심만 담는 연습이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완벽한 참고 자료는 신문 기사이다.

넷째, 품위를 지키고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는 용어나 과격한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수행평가에 그대로 사용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잘못된 단어 선택 하나가 글 전체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작성자의 사고력, 도덕적 감수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놀이나 혐오에 가까운 표현을 조심하고 학문에 걸맞은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평소 인터넷 게시물 댓글보다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출판된 책과 신문 기사를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다섯째,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으면 안된다. 글의 내용을 보면 나름대로 해당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마음만 앞서고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어떤 의견을 제시했으면 그에 맞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때문에’라는 말이 붙어 있다고 해서 근거가 마련된 것이 아니다. 주제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주장을 했으면 그에 맞는 구체적인 논리 구조와 최소한의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어디까지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은 작성자가 갖춘 풍부한 배경지식이다. 토론과 글쓰기, 발표 등에 익숙한 학생이 폭넓은 독서와 암기를 포함한 지식 습득을 소홀히 한 경우는 단언컨대 없다. 지식이 부족한 단계에서는 활동보다는 지식 축적이 우선돼야 한다. 지식 습득을 등한시하고 지적 수준 향상 없이 약간의 기법과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얻은 내용으로만 승부하려 하면 발전하기 어렵다. 많이 배우고, 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글을 써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담긴 여러 지식들이 뒤섞이고 충돌과 결합을 일으키며 내 생각과 사고력의 성장을 이끈다.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지식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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